
“미·중 패권 경쟁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같은 상황이 16번 있었는데, 3번을 제외하면 모두 전쟁으로 이어지는 극단적 결과를 낳았다.”
최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매일경제신문 주최로 ‘제2회 대한민국 리부팅 포럼’이 열렸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의 미·중 패권 경쟁 양상은 누구 하나 무릎을 꿇기 전에는 계속된다”면서 “양국 경쟁이 격화·장기화될 상황을 대비해 한국은 시급히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회 포럼이 열렸던 지난 3월 말 이후 미·중 경쟁 양상은 급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초 관세전쟁 포문을 열자, 중국의 보복관세가 이어졌다. 미국은 최고 145%까지 대중국 관세율을 높였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이후 미국은 중국에 대해 일부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등의 뇌관은 살아 있다.
이 총장의 발언은 이러한 헤게모니의 충돌을 ‘뉴노멀’로 삼고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날 포럼에는 구자균 LS 일렉트릭 회장, 김석환 한세예스24홀딩스 부회장, 백진우 동성케미컬 대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조만호 무신사 대표, 엄석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 재계와 학계 인사 1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현실화된 관세 전쟁을 우려하면서 구체적인 1순위 돌파구로 ‘기술혁신’을 손꼽았다. 대외 변수가 불확실성을 키워갈수록 기술 혁신으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구자균 회장은 “미국이 세계 전력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에 달하는데 최근 데이터센터들이 생기면서 전력 수요가 더 늘었다”면서 “여기에 필요한 게 배전반 솔루션인데, 동양 국가 중에 미국에서 이 사업을 할 수 있는 곳은 LS 일렉트릭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술만 10년 넘게 개발했다”면서 “결국엔 기업의 본질인 기술이 앞서야 관세나 외부 요인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혁신이 가장 필요한 분야로 참석자들은 반도체 분야를 꼽았다. 황철주 회장은 “아마존, 구글처럼 한국이 인공지능(AI) 자체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AI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부연설명했다.
기술혁신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인프라스트럭처, 인력 양성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김석환 부회장은 “국내에서 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곳 중에 GPU를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메타가 GPU 2만대, 테슬라의 ‘Xai’가 10만대 GPU를 운영하고 있고 일본은 청부 차원에서 GPU 클라우드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AI 인프라 운영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기술자들에 대한 제대로된 제도적 대우가 마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참석자들은 앞다퉈 기술자 보호 제도를 제안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요즘 정년이 65세에서 70세까지도 간다”면서 “나이가 좀 있더라도 기술인에 대해서는 자격증을 지급하고, 이들을 재고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나아가 기술인을 검증하고 관리하는 정부위원회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위원회가 심사해 국가 기술자로 임명하고, 회사 이직 시 위원회 차원에서 관리하고 운동선수처럼 이적료를 내는 모델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구 회장은 “변호사, 의사처럼 기술인 면허증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받았다.
기술 관련 각종 정부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엄석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무원 수가 줄어들면 규제의 수도 동시에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론 머스크처럼 폭력적인 방식을 따르자는 것은 아니다”며 “공무원 수는 줄이고 개별 공무원 역량과 보수를 높여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규제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