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음력 11월 18일. 조선 수군 70여척과 명나라 수군 400척이 노량으로 진군했다. 거기서 이순신은 일본 선단 500여척 가운데 200여 척을 격파하고 150여 척을 파손시켰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정오까지 이어졌고 관음포로 달아나는 일본군을 추적하던 이순신은 적의 탄환을 맞고 전사한다. 그의 나이 54세. 요즘으로 치면 젊은 나이다. 그의 이름 앞에 '불멸(不滅)'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대구 방천시장에 김광석 거리가 생겼다. 약 350미터 길이의 길에 이 곳에서 태어난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한 다양한 벽화와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노래하는 철학자'라고 부른다. 김광석의 대표곡인 '서른 즈음에'는 2007년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다. 그가 돌연 자살했다.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긴 하나 공식적으로는 자살이다. 그의 나이 33세. 그에겐 불멸의 가왕이란 칭호가 있다.
지금 20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윤동주라고 답할 것 같다. 민족적 저항 시인으로 강인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나 그의 시는 한없이 부드러운 서정으로 넘친다. 1917년생인 윤동주는 해방이 되기 직전인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치안유지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2년형을 받고 투옥돼 옥사한 것이다. 그의 나이 28세. 그는 한국인의 가슴 속에 불멸의 시인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불멸의 조건은 요절(夭折)이라고.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분들에게 남다른 애절함을 느끼는 건 인지상정인 것 같다.
사진 출처 : 큐스포츠, 이상천
이 방면 글은 처음인지라 좀 쌩뚱 맞아 보일 수도 있겠다. 당구 얘기다. 우리나라 3쿠션 당구계에 두 명의 별이 있다. 이상천과 김경률. 공교롭게도 이 두 분 모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두 사람에겐 불멸의 당구인이란 칭호가 붙는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대학교 때 당구 좀 쳤다. 당구장에서 자장면이나 짬뽕(자장면이 먹기엔 편함)을 시켜 먹으면서 3쿠션을 쳤다. 무려 27시간이나 쉬지 않고 3쿠션을 친 적도 있으니 어지간히 당구에 빠졌다고도 할 수 있다. 1979년도가 전성기인데 그 때 이 방면에 신진 고수가 한 명 탄생한다. 그가 이상천이다. 경기고등학교를 나와(68회) 서울대학교를 졸업했으니 수재임이 분명한데 3쿠션에 미쳐 당구장에서 살았다. 1979년 그는 전국 당구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대회에 출전한다. 이상천의 경기를 본 적도 있고 함께 당구를 쳐보기도 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그의 말은 "당구는 하박으로 치는 거야"다. 즉, 팔꿈치 아랫부분의 팔 힘으로만 공을 치고 상박, 즉 팔꿈치 윗부분은 고정시키라는 거였다. 그 당시 재야의 최고 고수는 '이리꼬마'였다. 3쿠션의 전설이었다. 작은 체구에 일반인은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뒤돌리기(우라마우시)를 회전(시네루)을 조절하면서 치는 기술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종로구 모 당구장에서 이상천과 이리꼬마가 3쿠션을 친다는 소문이 돌면 관중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이상천은 7패 끝에 이리꼬마를 누른다. 7전8기. 그 후 그를 필적할 적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1993년 세계투어 종합순위 1위에 올랐고, 뉴욕타임즈가 그를 대서특필했다. 99년 뉴욕타임즈는 이상천을 '3쿠션 당구계의 마이클 조단'이라 치켜세운다.
한 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당구 천재 이상천. 그는 1987년 미국으로 이민 가 '상리(Sang Lee)'라는 이름으로 빛나는 성공을 일구고 명예의 전당에까지 올랐다. 그리고 대한당구연맹 회장으로 컴백해 여자 3쿠션의 지존인 자넷리까지 초청하는 초대형 행사를 준비한다. 그러나 그의 몸에 퍼진 암세포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그 행사를 2달 정도 앞두고 암세포는 뼛속까지 전이돼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의 나이 50이었다.
사진 출처 : 코줌코리아, 김경률
이상천이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던 해 우연하게 당구장에 들른 중학교 3학년 시골 소년이 있었다. 그는 첫 눈에 당구에 반했고 공부는 접어두고 당구만 쳤다. 그가 훗날 세계 정상에 오른 김경률이다.
이상천이 지존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세계 3쿠션계는 이른바 4대천왕의 시대였다.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 토브욘 브롬달(스웨덴), 대니얼 산체스(스페인)가 그들이다. 이들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2008년 세계 선수권대회 때 브롬달이 30점을 내는 동안 우리나라 선수는 한 점도 못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 기라성 같은 3쿠션 강자들 틈에 돌연 한국인 촌놈인 김경률이 등장한다. 나는 그의 경기를 케이블방송을 통해 자주 봤다. 185cm, 95kg의 거구인데 어쩌면 그렇게 부드럽게 큐를 놀리는 지 신기할 정도였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중 가장 큰 것은 회전에 있다. 고수일수록 회전이 좋다. 이걸 하려면 소위 스냅샷을 칠 줄 알아야 한다. 김경률은 초절정의 스냅샷을 구사한다. 스냅샷을 잘 쳐야 빗겨치기(기레까시)와 리보이스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김경률은 예술이었다. 그는 이상천하고도 친선 경기를 해서 1승1패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그의 부모가 거주하는 일산 아파트 20층에서 떨어졌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유족도 부검을 원치 않아 정황상 단순 실족사인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의 나이 35세. 당구 천재 김경률은 제대로 실력을 꽃피워 볼 기회도 잡지 못하고 비운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 출처 : 큐스포츠, 부산아시안게임3쿠션 결승전 (좌) 이상천, (우) 황득희
그렇게 한국 당구계의 큰 별 2명은 모두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고, 우리 곁에 불멸로 남았다.
6월28일 국내 첫 당구 전문 웹사이트 'MK빌리어드뉴스'가 공식 출범했다. 3쿠션 레슨 동영상도 있고, 커뮤니티도 구성해놓았다. 관심이 크다.
[손현덕 매일경제 논설실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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