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1 16:42:08
지난 17일(현지 시각)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유명 작가 JK 롤링은 소셜미디어 X에 자신을 찍은 사진 한 장을 게시했다. 흡족한 모습으로 시가를 피우면서 다른 한 손에는 마치 축배를 드는 것처럼 술잔을 치켜든 사진이다. 사진에는 “계획대로 되어서 좋아요(I love it when a plan comes together)”라는 짤막한 글귀와 함께 대법원(SupremeCourt), 여성의 권리(WomensRights)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 사진은 무려 4383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롤링이 해당 사진을 올리기 하루 전인 16일, 영국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생물학적인 여성만 여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발언 때문에 지난 몇 년간 ‘차별주의자’라는 비난 여론에 시달렸던 롤링이 사진을 올린 이유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쁨을 표시하기 위한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연예매체 페이지식스 역시 16일 “‘뿌듯한(proud)’ 롤링이 대법원 판결에 축배를 들었다”라고 보도했다.
앞서 롤링은 서구권을 휩쓰는 젠더 이데올로기와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몇 년간 논란의 중심이 됐다. 그는 지난 2020년 ‘생리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평등한 세상 만들기’라는 기고문을 자신의 X에 공유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생리하는 사람들(people who menstruate)을 가리키는 단어가 존재했다. 그게 뭐였지? 움벤(Wumben)? 윔펀드(Wimpund)? 움머드(Woomud)?”라고 썼다. 성전환 수술로 여성이 된 사람들까지 여성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트렌드로 인해 생물학적 여성을 지칭하는 명칭 자체가 사라져버렸다고 비꼰 것이었다. 롤링은 이어 “(타고난) 성별이 진짜가 아니라면 동성애란 것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여성이 이제껏 살아온 현실 자체도 지워진다”고 주장했다.
롤링의 이 같은 주장은 거센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옳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 여론이 훨씬 더 거셌다.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들은 “FTM 트랜스젠더(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남자로 정의하는 사람) 등 성소수자가 있기 때문에 생리하는 사람만 여성이라는 롤링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롤링의 발언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여러 성소수자를 차별했다”라고 공격했다. 롤링이 이미 2019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비판 발언을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된 세무사 마야 포스타터를 지지했다는 사실이 불거지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한편 영국 대법원은 지난 16일 “성전환(transgender) 여성을 영국의 평등법이 정의하는 ‘여성’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판결했다. 판사 다섯 명이 만장일치로 “2010년 평등법에서 ‘여성’과 ‘성’이라는 용어는 생물학적 여성과 생물학적 성을 의미한다”고 결론 내렸다. 영국 평등법(Equality Act)은 2010년 제정된 영국의 반(反)차별·양성 평등법을 뜻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영국 법에서 ‘여성’이라는 용어는 출생 시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전망이다. 비슷한 문제로 논란을 겪는 다른 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트랜스젠더 인권 확대를 주장해 온 쪽에서는 “트랜스젠더를 법률적으로 배제했다”며 반발했고, 일부 여성 단체는 “성별을 생물학적으로 구분한 것이 법률 취지에 부합한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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