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4 17:59:23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연결되는 세운, 대림, 신성, 진양상가 주변에 새로운 가게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을지로 12, 14길로, 이곳엔 원조 을지로다운 ‘힙’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을지대학교병원, 1980년대 전에 태어난 이들에게 이 병원은 을지로에 있던 것으로 기억할 것이다. 맞다. 6.25때 전선에서 만난 박영하 군의관, 전증희 간호장교 부부가 1956년 을지로에 박산부인과를 개원한 것이 시작이다. 그 후 1967년 을지병원을 개원해 1994년 이전할 때까지 아픈 이들을 치료했었다. 이 을지병원이 있던 자리가 바로 을지로12, 14길의 중심이다. 명보사거리 DB손해보험빌딩 뒤에서 을지로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이곳엔 인쇄소와, 공구상가, 각종 전자제품, 조명가게 등이 밀집돼 있어 상권의 특징이 분명하다. 그 밖에도 술집, 사무실, 게스트하우스 등등 여러 형태의 가게들이 섞여 있다. 특히 다양한 식당들이 많다. 명동과 가깝고 주변에 대형 오피스빌딩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먹거리 문화가 발달되었다. 물론 이 식당들은 술과 고기를 파는 형태가 대부분. 그런데 이 지역 좁은 골목길마다 숨은 듯 자리한 ‘힙지로 증명 숍’들이 있다.
먼저 파스타와 피자 맛집으로 알려진 ‘르템플’. 이 집은 신선한 재료로 여러 나라의 레시피를 조화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독특한 참나물 파스타, 등심과 목심을 토마토 소스로 4시간 끓인 라구 소스에 가지와 바질을 올린 라구 소스 타르트 플람베는 이 집의 시그니처다. 직접 양조한 고래맥주 6종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
웨이팅 1시간은 기본인 ‘산청숫불가든 2호점’. 입구부터 재미있는 이 집은 재래식소금구이, 고추장양념구이 맛집이다. ‘화로에 불길이 올라오면 과감하게 숯에 소화기 물총을 쏴주세요. 고기를 자르지 말고 드셔야 더 맛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소금구이는 첫 입은 산청뽕소금만 살짝 곁들이면 고소함이, 구운 쪽파와 고기를 우엉조림에 담가 먹으면 감칠맛이, 저염 명란쌈장과 생와사비를 올리면 단백함이 최고다. ‘공간갑gong gan gab’은 커피 맛집이다. 낡은 1, 2층 건물 1층은 주문과 테이블 3개, 2층은 테이블 10개가 있다. 이 집 시그니처는 크렘 브뤨레라떼와 공간 우유라떼, 카이막 스콘 세트이다. 낭만 가득한 ‘레드스타’는 바 테이블 공간이다. 유난히 양이 많은 위스키, 와인에 크림소스 옥수수 뇨끼, 생면 블로네제 라자냐 등이 있다.
맛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을지영화관’은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골목 안 건물 2층에 위치한 이 영화관은 4K 빔 프로젝터와 130인치 대형 스크린이 구비돼 있으며, 예약하면 10분 전에 영화관 문을 열 수 있는 비번을 보내준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곳이 을지로다. 그중에서도 조금 천천히 그 변화를 즐기고 싶은 거리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글과 사진 장진혁(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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