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 정다영·김희정·정성규 1995년 악조건 속 건립 한국관 가려졌던 건축학적 의미 조명 건축가·작가 4인의 작품에선 자연과 공존하는 한국관 다뤄 국가관 지속가능성 탐구 기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예술감독 김희정, 정성규, 정다영(왼쪽부터). 이충우 기자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시작부터 악조건 속에 건립됐고, 이후에도 전시 공간으로서 여러 단점을 극복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어요. 하지만 한국관을 건축 공간 그 자체로 바라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오히려 국가관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2025 베니스 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예술감독을 맡은 큐레이터 그룹 CAC(큐레이팅 아키텍처 컬렉티브)의 정다영·김희정·정성규는 올해로 건립 30주년을 맞은 한국관의 건축적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을 주제로 한국관의 건립 과정을 살펴보고,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의 건축적 의미와 지속가능성을 탐구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은 '인텔리전스: 자연적·인공적·집단적'을 주제로 5월 8~9일 프리뷰를 시작으로 11월 23일까지 6개월간 카스텔로 자르디니 공원에서 개최된다. 기후변화와 지속 가능한 건축, 인공지능(AI) 시대의 건축, 우주 건축 등을 폭넓게 다룬다. 국가별 전시에는 세계 30여 개국이 참여하고 이 가운데 아제르바이잔, 오만 술탄국, 카타르, 토고 등 4개국은 올해가 첫 참가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1995년 건립됐다. 한국 건축가 고(故) 김석철과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가 공동 설계한 한국관은 화이트 큐브 형태의 일반적인 전시관이 아닌 철골조의 비정형 유리 건물로 지어졌다. 건립 당시 용지 내 나무를 한 그루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베니스시의 엄격한 지침에 따른 결과였다.
'2025 베니스비엔날레 제19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설치 전경 조감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희정 큐레이터는 "예를 들면 한국관은 유리창을 통해 전시장 내부로 햇빛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 다른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오랜 시간 존재해왔기 때문에 그동안은 단점이 많이 부각됐던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에 CAC는 한국관에 대한 기존 관점을 뒤집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성규 큐레이터는 "한국관 건립 후 30년이 지난 지금 건축계에서는 자연과 공존하는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한국관은 이 같은 맥락에 잘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강조했다.
한국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축한 이번 전시는 '두껍아 두껍아/헌 집 줄게/새 집 다오' 구절로 유명한 흙놀이 전래동요를 모티브로 구성됐다.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지난 30년의 발자취와 그동안 무대 밖에 존재했던 건축물로서의 한국관을 샅샅이 보여준다. 실내에는 한국관의 지하, 옥상 등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공간들이 함께 표시된 건물 모형과 도면, 건축 다큐멘터리 영상 등이 전시된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4명의 건축가·작가가 한국관의 아카이브 자료를 바탕으로 작업한 커미션 작품을 펼친다. 건축 설계사무소 아뜰리에 KHJ의 김현종 대표, 스튜디오 히치의 박희찬 디렉터, 플로라앤파우나의 이다미 대표와 독일 예술집단 플라스티크 판타스티크의 양예나 공동 디렉터가 참여했다. 정다영 큐레이터는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물리적인 건축물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인간적 요소들을 섬세하게 조명하면서 한국관이 주변 자연유산과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한국관을 개념적으로 해체, 재구성하면서 그 존재 가치를 일깨운다. 이다미는 설치작 '덮어쓰기, 덮어씌우기'를 통해 한국관 옆 나무와 이곳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고양이 '무카' 등 숨은 존재들을 화자로 내세워 다양한 존재가 공존하는 한국관의 이야기를 새롭게 쓴다. 양예나는 가상의 땅속 이야기를 형상화한 수십 개의 조각들을 한국관 건물 아래 공간에 설치한 작품 '파빌리온 아래 삼천만년'으로 자르디니 공원의 원초적 시공간을 다룬다.
박희찬은 가변적 설치물과 드로잉으로 구성된 '나무의 시간'을 선보인다. 한국관 주변 나무들의 그림자 변화에 반응하는 건축 장치를 기반으로 외부 경관을 한국관 내부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면서 자르디니 공원의 중요한 유산인 나무를 조명한다. 김현종의 건축 구조물인 '새로운 항해'는 한국관 옥상 공간에 설치된다. 관객은 바다를 향해 편 듯한 돛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을 통해 이곳 모든 국가관이 공유하는 하늘과 바다를 새삼 바라보게 된다.
한국관은 올해 카타르관 등이 신설되기 전까지 30년 간 자르디니 공원 내 29개의 베니스 비엔날레국가관 중 가장 마지막에 들어선 곳이기도 했다. 정성규 큐레이터는 "한국관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존재로, 이번 전시는 국가관들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 할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