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2 15:30:47
빈국립오페라 종신 솔리스트 연 20여개 역할 소화하며 성장 독일어 구사 능력 등에 강점 올해 마포 M아티스트 선정 말러 가곡, 오페라 아리아 등 23일 고국서 첫 독창회 열어 5월 말러 페스티벌도 초청돼 거장 줄리어스 드레이크 협연
“제가 노래를 잘 못했던 건 분명해요.”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전날까지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전속 솔리스트로서 노래를 부르고 왔다는 바리톤 박주성(32)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2021년 오페랄리아 콩쿠르 3위, 2023년 헬무트 도이치 독일 가곡 콩쿠르 2위 등을 수상하고 지금은 세계적 음악의 도시 한복판에서 활약하는 성악가가 노래를 못했다니. 그러나 그는 “음악대학도 3수 끝에 늦게 들어갔고, 학교에서도 특별히 빛을 발하거나 잘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며 “노래가 너무 좋은데도 늘지 않아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물론 지금은 “뒤늦게 찾은” 목소리로 갖은 러브콜을 받는다. 다음 달 10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음악당 콘세르트헤바우에서 ‘말러 페스티벌’의 하나로 거장 피아니스트 줄리어스 드레이크와 말러 가곡을 협연한다. 11월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초연작 ‘더 몽키 킹’ 출연도 예정돼 있다. 바쁜 해외 일정 전, 이달 23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선 2025 상주음악가(M 아티스트)로서 첫 국내 리사이틀을 연다. 말러·슈트라우스 가곡부터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바그너 ‘탄호이저’ 등 오페라 아리아까지 다채롭게 선보이는 기회다.
특히 말러는 현재 그의 ‘직장’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냈던 터라 특별한 교감을 느낀다. 그는 “말러의 가곡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를 선곡하며 너무 어렵고 인기 없을 거란 얘기도 들었어요. 그래도 가장 매력 있는 곡들을 뽑았습니다. 주제도 뚜렷하고, 시를 낭송한다기보다 마치 오페라 대사인 것처럼 극적이에요. 독일어의 아름다움이 가진 매력, 빈의 향취를 들려드리겠습니다.”
4~5월의 공연은 피아니스트 신미경, 드레이크 등 성악·가곡 분야의 대선배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다. 박주성은 “특히 드레이크는 과거 연주를 들으신 기억을 잊지 않고 먼저 제안을 주셔서 감동 받았다”며 “오랜 팬이었고 음반으로 듣던 분들과 동료로 만난다는 게 큰 영광”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연세대 성악과를 실기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여전히 “한 번도 제가 뛰어난 성악가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다만 대학 때부터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뛰어나긴 했다. 어릴 때 미국에서 거주하며 영어를 익혔고, 독일어도 원어민처럼 한다는 점 덕분에 관심을 얻고 성장했다”고 돌아봤다.
특히 큰 기회가 찾아온 건 많은 공연이 취소됐던 코로나19 시기였다. 참가하려던 국제 콩쿠르가 취소된 대신 노래 영상에 전문가의 피드백을 받게 됐는데, 그때 빈 오페라 측에서 ‘영 아티스트’ 영입 제안을 보낸 것이다. 그때도 ‘뭐 하나 뛰어나진 않는데 희한하게 매력이 있고 기억에 남는다’는 평을 들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박주성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선 1년에 60개 정도의 공연을 올리고, 그중 제가 받는 역할이 20개 정도예요. 많은 역할에 좋은 수준으로 빠르게 적응하는 훈련이 됐죠. 저 역시 특정 스페셜리스트보단 다양하고 유연한 성악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박주성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본 오페라 ‘카르멘’에 마음을 뺏겨 진로를 결정했다. 누군가의 꿈이 될지도 모를 공연을 올리는 마음 역시 절대 가볍지 않다. 8월과 12월에도 마포문화재단과 공연을 준비 중이다. 그는 “내 이름으로 내 레퍼토리를 짠다는 것에 큰 재미와 부담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며 “관객들이 ‘재밌었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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