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제주도를 주요 배경으로 제작한 시대극은 세계 39개국에서 10위권 내로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다. '폭싹 속았수다'는 중국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후반부에 장가계(장자제) 여행이라는 대사가 등장하자 중국에서는 한국으로 배우들의 장가계 공식 초대장을 발송했다. 그렇다면 연속극 히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는 아이유와 박보검을 비롯한 출연 배우의 열연, 제주도라는 공간,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지는 시나리오와 함께 사계절의 변화를 담아낸 배경음악이었다. 전체 4막으로 이뤄진 '폭싹 속았수다'의 OST는 한국 음악의 변천사나 다름없었다. 남인수 '감격시대', 양희은 '나도 몰래',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김정수 '당신', 노고지리 '찻잔', 이지연 '바람아 멈추어다오', 산울림 '아니 벌써, 동물원 '널 사랑하겠어' 등이 드라마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여기에서 1부의 시작과 함께 음악 애호가의 주목을 받았던 노래가 김정미의 '봄'이었다. 해당 곡은 지금까지도 세계 음반 수집가의 관심을 받는 레코드인 'NOW'의 수록곡이며,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신중현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명곡이다. 1953년생인 김정미는 1971년 고등학교 3학년의 신분으로 신중현 사단에 합류했다. 가수 김추자와 함께 신중현의 페르소나였던 2명의 여가수는 각자의 개성을 극대화한 노래를 남겼다.
'NOW'에서 만날 수 있는 김정미의 마성적인 창법은 그녀에게 '한국 사이키델릭의 여제'라는 별칭을 선사해줬다. 사이키델릭이란 1960년대 후반의 록 음악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던 몽롱하고 환각적인 감성을 표현했던 장르였다. 미국에서 활동했던 가수 그레이스 슬릭, 재니스 조플린 등으로 대표되는 사이키델릭은 신중현의 초기 음악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록을 중심으로 포크, 블루스 등의 장르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1971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던 김정미는 1972년 '김정미 가요 1, 2집'을 내놓는다. 당시 신중현이 리더로 활동했던 그룹 The Men의 보컬리스트였던 김정미는 1973년 'NOW'를 완성했다. 이 앨범에 수록한 '봄'은 김정미 창법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마스터피스였다. 특히 노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저음의 바이브레이션은 'NOW'가 1960년대 말부터 불어닥친 사이키델릭 열풍을 기억하는 리스너의 사랑을 받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국에서는 'NOW'를 시디(CD)와 엘피(LP)로 재발매하기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당시 김정미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김정미의 매력적인 창법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대중가요 단속을 시작했던 정권의 희생양이 됐다. 저속하고 퇴폐적인 창법이라는 이유로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그녀는 결국 1977년 음악계를 떠나야만 했다. 그렇기에 '폭싹 속았수다'의 주제곡으로 등장한 김정미의 '봄'은 OST의 빛나는 선택이었다.
지난 주말에 지인이 운영하는 엘피바에 방문했다. 그는 며칠 전에 핀란드인이 엘피바에 방문해서 김정미의 'NOW' 앨범을 찾았다고 전했다. 일본과 영어권 국가를 너머 김정미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의 제주 말인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는 많은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기다리멍 살아라. 사랑도, 행복도, 언젠가는 온다"는 대사를 떠올리며 김정미의 노래를 소환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