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4 21:00:00
국내 최대 해운 업체 HMM이 새 수장을 맞았다. 김경배 사장 뒤를 이어 최원혁 전 LX판토스 사장(65)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면서 산적한 과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갈지 해운 업계 관심이 뜨겁다.
HMM 새 수장 최원혁 선임
글로벌 물류 업계 40년 근무한 물류통
HMM은 최근 서울 여의도 파크원 본사에서 진행된 정기 주주총회, 이사회에서 최원혁 대표이사를 신규 선임했다고 밝혔다. 최원혁 신임 사장은 성균관대 응용통계학과 출신으로 CJ대한통운 글로벌부문 부사장, LX판토스 대표 등 글로벌 물류 업계에서 40년 이상 근무한 물류 전문가다. LX판토스에서 8년 동안 최고경영자(CEO)를 맡아오면서 글로벌 물류에 대한 전문성, 경영 역량, 조직 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통합물류협회장을 지냈다.
최원혁 사장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최근 HMM을 둘러싼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다.
HMM의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3조5128억원으로 2023년 대비 50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39% 늘어난 11조7002억원에 달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코로나 특수 시기였던 2021년, 2022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많았다. 2022년 당시 영업이익(9조9516억원)와 비교하면 적지만,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0% 수준이다. 홍해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 중국 등 주요국 물동량 증가로 전 노선에서 운임이 상승한 게 호재로 작용했다. 여세를 몰아 HMM은 1만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 12척을 미주 항로에 신규 투입하고, 멕시코 신규 항로를 개설하는 등 수익성 극대화에 힘쓰는 중이다.
최근에는 SK해운 일부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도 나섰다. SK해운 소유주인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와 매각 주관사 모건스탠리는 SK해운 탱커선, 액화석유가스(LPG)선, 벌크선 등 일부 사업부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HMM을 선정했다.
SK해운은 원유선 22척, 액화천연가스(LNG)선 12척, 액화석유가스(LPG)선 14척, 벌크선 10척, 벙커링선(선박에 LNG를 연료로 공급하는 선박) 7척 등을 운용해왔다. 한앤컴퍼니는 2018년 약 1조5000억원에 SK해운을 인수해 비주력 사업부를 줄이고 낡은 선박을 매각하며 기업가치를 올려왔다. SK해운은 2023년 매출 1조8865억원, 영업이익 3671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실적이 괜찮다.
다만 HMM은 SK해운의 일부 사업부만 인수한다. 2014년 현대상선 시절 LNG사업부를 매각하면서 겸업 금지 조항을 맺었기 때문에 SK해운 LNG사업부는 이번 인수 대상에서 제외된다. SK해운 전체 몸값이 4조원대로 추정되는데 HMM은 이번 인수 가격을 2조원대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HMM이 지금 시점에서 SK해운을 품에 안은 데는 이유가 있다. 컨테이너선 사업 의존도가 워낙 높다 보니 이 비중을 떨어뜨리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다. HMM 전체 매출에서 컨테이너선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5%에 이른다. 컨테이너선은 해운 시장 상황에 따라 운임 변동폭이 크다. 호황일 때는 넉넉한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불황이 닥치면 이익이 급감하는 구조다.
이번에 인수하는 벌크선 사업은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그대로 실을 수 있는 화물 전용선이다. 철광석, 유연탄 등 원자재를 주로 실어 나르는데 벌크선은 화주와 장기 계약을 맺는 특성상 불황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평가다. “HMM이 SK해운 주요 사업부를 인수하는 것은 컨테이너선에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해운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 행정부가 중국 조선업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안을 내놓은 것도 HMM에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미국에 입항하는 중국산 선박에 대해 최대 150만달러(약 21억원)의 수수료 부과를 추진 중이다. HMM의 경우 주로 국내 조선 3사에 선박을 발주한 덕에 중국산 선박 보유율이 낮아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제도 만만찮아
해상 운임 하락 우려에 재매각도 난항
하지만 최원혁 사장 앞에 놓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실적은 괜찮았지만 올해 실적이 상승세를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경기 침체 국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반도체 등 주요 산업 관세 폭탄을 예고한 탓이다. 글로벌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컨테이너선 운임이 하락할 우려가 크다.
글로벌 해상 운임 수준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4월 11일 기준 1394.68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평균치(2506) 대비 반 토막이 난 수준이다. 해상 운임이 떨어지면 컨테이너선 비중이 높은 HMM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과의 관세전쟁이 격해지면서 아시아~미주 항로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관세를 245%까지 올렸고 중국 정부도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125% 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이 여파로 당장 올 1분기 영업이익이 하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해운 업계 관계자는 “미중 관세 전쟁이 지속되고 일시적으로 유예된 주요국 상호관세까지 시행돼 물동량 감소가 현실화하면 HMM 실적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HMM 숙원 과제인 재매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가뜩이나 몸집이 큰 상황에서 SK해운까지 품에 안아 덩치가 더 커진 만큼 인수 후보를 찾기가 녹록지 않다. HMM 시가총액은 17조원 안팎으로 지난해 2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이 제시한 가격(6조4000억원) 대비 10조원가량 높아졌다.
문제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지분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초 매각 협상 당시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내놓은 HMM 지분은 57.9%였다. 지난해 10월 영구채를 주식으로 추가 전환하면서 합산 지분율은 67.05%로 10%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 전환사채(CB)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이들 지분은 71.68%까지 늘어난다. 늘어난 지분을 모두 인수하려면 매수자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 포스코, 한화 등 현금이 넉넉한 대기업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만 막상 이들 그룹이 인수전에 뛰어들기가 녹록지 않다. 해운업 특성상 국가 수출과 직결되다 보니 정부 입김이 거센 데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수조원에 달하는 몸값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매각 일정이 더 늦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임기는 오는 6월이고, 해양진흥공사의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장관도 대선 결과에 따라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당초 올 하반기 HMM 재매각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매각 일정이 한없이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운 업계 관계자는 “최원혁 사장이 HMM 수장에 올랐지만 트럼프 행정부 관세 여파로 실적 상승세가 한풀 꺾일 가능성이 높은 데다 매각 작업도 안갯속이라 고심이 클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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