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하우스만 인터뷰
세계 경제 트렌드는 ‘업무교역’
국경 넘는 서비스 교류 활발
자국민에 한정된 고용방식은
국가·기업 발전 막는 걸림돌
한국경제 혁신 이끈건 대기업
사내 기업가정신 힘 실어줘야
“제조업에선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지만, 서비스 분야에선 글로벌화가 가속화 될 것이다. 이에 고급인력에 대한 이민 정책이 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다.”
국가의 성장 요인을 탐구하는 기관인 하버드대 성장연구소(Growth Lab)의 리카르도 하우스만 소장은 ‘향후 5년간 국가 경제성장을 좌우할 중요 요소’를 묻는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세계경제포럼 폐막일인 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하우스만 소장은 업무 교역의 증가, 탈탄소화, 그리고 인공지능(AI) 등 세 가지를 키워드로 꼽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업무 교역의 증가를 강조했다. 업무 교역(trade in tasks)라는 개념은 상품 무역(trade in goods)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제조업 상품이 아닌 서비스업에서의 무역을 의미한다.
하우스만 소장은 “팬데믹 기간 우리는 사무실에서 하던 일을 집에서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더 나아가 사실상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소위 말하는 ‘비즈니스 서비스’ 등은 업무 거래를 급증시키고 있다”고 했다.
하우스만 소장은 “아일랜드에 본사를 둔 경영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는 미국 시장의 업무를 위해 2만5000여명의 직원을 아르헨티나에서 고용하고 있다”고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본사 내부 또는 인접 지역에서 하던 업무 중 상당 부분이 훨씬 낮은 임금을 받는 나라에서 원격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우스만 소장은 “이같이 서비스의 교역은 상품의 교역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전세계적으로 이런 추세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다양한 서비스 업무를 여러 나라에 분산시키는 일종의 가치 사슬의 분할”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이민 정책, 특히 특히 고숙련 이민자들에 대한 개방 정책이라고 하우스만 소장은 말했다. 그는 “많은 나라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고숙련 근로자들의 이민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이민 정책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들은 기업이 고용할 수 있는 외국인의 수를 제한하고, 외국인의 전문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며, 특정 직업을 자국민에게만 제한하고, 대학 교수와 고위 공무원 등 일부 고숙련 직업에 대해 시민권을 요구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는 성장, 기술 발전, 나아가 기업가정신에 매우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하우스만 소장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숙련 이민정책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일지, 아니면 폐쇄적으로 나올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며 “실리콘밸리는 개방적인 정책을 옹호하지만, 공화당 내 주류 인사들은 폐쇄적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미국이 고숙련 인재에 대한 접근성을 잃는다면 그 대가는 매우 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탈탄소화에 대해선 기후 변화 대응에 따라 급성장할 가치 사슬에 빠르게 참여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하우스만 소장은 “탈탄소화를 촉진하는 제품들, 가령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전력 시스템 등 관련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며 “또 철강, 알루미늄, 암모니아와 같은 에너지 집약 산업들이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재배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명한 국가들은 이런 산업의 가치 사슬 발 빠르게 올라탈 것”이라고 했다. AI에 대해선 “새로운 기술의 ‘킬러 앱’을 개발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남미(베네수엘라) 출신으로 개발경제학에 천착해온 하우스만 소장은 한국의 경제 발전사에도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재벌 대기업 내부로부터의 혁신’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설탕 제조로 시작해 반도체 산업으로 이어진 삼성의 역사를 예로 들며 “한국경제의 혁신은 대부분 재벌 대기업 내부에서 일어났다”며 “이는 사내 기업가정신(intrapreneurship)의 전형”이라고 했다.
한국경제의 어두운 단면으로 지적되는 개발시대 당시의 정경유착에 대해선 ‘규율이 있는 지원(disciplined support)’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당시 한국 정부는 세계무대에서의 경쟁, 즉 수출을 지원의 조건으로 내세웠다”며 “이는 매우 영리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하우스만 소장은 “현재의 시각으로 당시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 누리고 있는 환경의 원천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보스 특별취재팀 = 황인혁 부국장 / 윤원섭 특파원 / 진영태 기자 / 연규욱 기자 / 배명민 MBN 기자 / 문가영 기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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