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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당구W ‘돌풍’ 강민구 “홍진표와는 피하고 싶었다”

‘PPPQ부터 본선까지 8연승…“32강 세넷전은 경험 부족”
“큐 교체하니 공이 척척 맞아…당구가족은 나의 힘”

  • 기사입력:2017.10.16 11:10:30
  • 최종수정:2019-01-24 1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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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직전 막을 내린 ‘2017 청주직지 당구월드컵’(청주월드컵)의 주인공은 ‘한국선수 첫 2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김행직이다. 그러나 본선인 32강전까지 화제의 주인공은 단연 강민구(35‧충북연맹)였다.

세계랭킹 772위로 PPPQ(예선 1라운드)부터 출발한 그는 예선 전 라운드(PPPQ → PPQ → PQ → Q)를 ‘8전 전승’으로 통과하며 32강에 당당히 올랐다. 비록 32강전에서 세계 26위이자 이 대회 공동3위를 차지한 루트피 세넷(터키)에게 접전 끝에 패(40:40 후 승부치기 1:2)했지만, 당구팬들은 지난 7월 ‘포르투월드컵’ 8강 최완영에 이은 ‘뉴 스타’ 등장에 주목했다.

대회 폐막후 열흘가량 지난 최근 그에게 당시의 소감을 물었다. 전화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이제 선수로서 도약의 첫 발을 내디뎠다”며 운을 뗐다.

▲세넷과의 32강전 “경험부족, 마지막 샷 왼손으로 쳤어야”

강민구는 세넷과의 청주월드컵 32강전 승부치기에서 2점째 앞돌려치기가 종이 한 장 차이로 빗나가자 큐를 바닥에 ‘쿵’하고 내리찍었다.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는 36:40으로 뒤지던 30이닝째 후구 공격에서 4득점하며 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승부치기까지 끌고 왔다. 게다가 선구인 세넷이 승부치기에서 단 2득점에 그친 상황. 여러모로 흐름은 강민구에게 유리해보였다. 하지만 그의 승부치기 두 번째 공격이 실패하면서 16강 진출의 꿈을 접어야했다. 더욱이 승부를 결정지은 마지막 실패 샷은 야속하게도 그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앞돌려치기였다.

“흐름상 제가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어쩔 수 없죠. 하하. 제 경험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짧은 각도의 앞돌려치기는 왼손으로 쳤어야 해요. 오른손 자세가 간신히 나와 그대로 쳤는데 힘이 살짝 들어가 회전이 덜 먹었어요. 경기 중에 딴 생각을 한 것도 패인이에요. 이 경기를 잡으면 16강에서 다니엘 산체스와 붙는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최대한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잡생각까지 하니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요.”

강민구의 생애 첫 월드컵 본선경기는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졌지만 잘 싸운’ 강민구는 이번 청주월드컵을 계기로 그의 이름을 당구팬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청주직지 당구월드컵 대회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강민구.
청주직지 당구월드컵 대회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강민구.
▲“PQ라운드 홍진표와의 경기, 피하고 싶었다” 강민구는 청주월드컵을 PPPQ(예선 1라운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국내외 강자들을 물리치고 Q라운드(예선 4라운드)까지 8연승하며 파죽지세로 예선을 통과했다. 쾌조의 컨디션을 보인 그였지만, 강민구는 “한국 선수들과의 경기가 부담됐다. 특히 PQ에서 만난 진표(홍진표 선수)와의 경기는 피하고 싶었다”고 했다.

“진표는 (2004년)선수등록할 때부터 친한 사이입니다. 그때만 해도 또래 선수가 별로 없었거든요. 또 진표는 대전, 저는 충북에 연고를 두고 있어 중부선수권 대회 등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PPQ라운드 마지막 경기 막판,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죠. ‘애버리지를 떨어뜨려 진표랑 다른 조에 가야하나’ 하하.”

하지만 강민구는 PQ라운드 홍진표와의 경기를 비롯, Q라운드에선 ‘헐크’ 강동궁마저 꺾는 등 승승장구하며 본선에 올랐다. 이때부터 당구팬들은 “도대체 강민구가 누구냐”고 궁금해 했다.

“당구선수로서 처음 받아보는 관심이었습니다. 기뻤어요. 사실 5년 전만 해도 다시 선수생활을 하게 될 줄 몰랐죠. 아마 예정대로라면 지금도 미국에서 경영학 공부하고 있었을 겁니다.”

▲“할아버지 유언에 돌연 미국행…그때도 당구생각뿐”

강민구는 20대 초반부터 꿈이 ‘당구선수’였다. 그런 그가 29살 때, 돌연 미국 유학을 떠난다. 경영학 공부를 위한 선택이었다.

“원래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공부 생각은 없었어요. 아버지도 수차례 권유하셨지만 제가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담도암 말기로 병상에 누워계셨던 할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손주 공부하는 걸 보고싶다’고 하셔서 2009년, 미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당부를 남기고 일주일 후 하늘로 떠났다. 이런 이유로 큐를 놓고 학업의 길을 선택한 강민구는 머릿속에서 당구를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2010년, 그는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흐지부지 끝나는 걸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게다가 당시 가세가 조금 기울어서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후로 큐를 다시 잡았죠. 예전보다 더 이를 악물었어요. 미국으로 떠나기 전 제 국내랭킹은 100위권을 들락날락했는데, 이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우선 아마추어대회에 출전하면서 큐 감각을 다시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 결과 ‘2015 화천쪽배축제 3쿠션 페스티벌’ 우승 등 성적이 따라왔다. 동호인 신분으로 출전한 잔카세이프티배는 2015~2016년 연달아 모두 본선에 올랐다. 그 기세를 몰아 작년 7월 충북당구연맹 선수로 재등록했고, 이어 한달 후에는 ‘2016 구리월드컵’ 국내 예선을 통과하며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기도 했다.

“작년 구리에선 예선 1라운드 탈락했지만, 그때 경험이 이번 청주월드컵에서 큰 도움이 됐어요. 또한 (작년 6월)가정이 생기며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것도 좋은 성적의 이유인 것 같아요.”

▲“내 힘의 원천, 당구가족들…큐 교체 덕 봐”

“이번 월드컵은 저 혼자의 힘으로 치른게 아닙니다. 제 아내(전지연 포켓볼 선수), 장인어른(전중우 3쿠션 선수), 처남(전인혁 3쿠션 선수) 등 처가댁 ‘당구가족’과 저희 부모님 등 가족들의 큰 응원과 함께 했어요. 저희 아버지는 32강전 당일 청주로 달려오셔서 지켜보셨어요.”

가족 이야기를 하던 강민구는 기자에게 아내 전지연 선수의 내조를 칭찬했다. 두 사람은 작년 6월 16일, 혼인신고하며 법적으로 부부가 됐다.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강민구는 “둘 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아직 식은 올리지 못했다”며 “아내가 포켓선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제가 응원받은 것처럼 아내에게도 큰 힘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강민구는 이번 월드컵 선전의 이유로 ‘큐 교체’를 꼽았다.

“13년간 H사 큐를 쓰다 올해 B사 큐로 바꿨어요. 두 달간 적응에 애를 먹었고, 한 달 전엔 슬럼프까지 왔죠. 하지만 월드컵 2주 전부턴 공이 척척 맞아 들어갔어요. 큐 교체가 ‘신의 한수’였던 것 같아요. 하하.”

이날 인터뷰는 그의 연습시간 중간에 진행됐다. 충북 청원구 오창읍 ‘SM&옵티머스당구클럽’이 그의 연습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공을 칠 때마다 은인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고1때 처음 큐 잡고, 23살에 국제식 테이블을 처음 접했어요. 그러다 2004년 당시 대한당구연맹 충북지부장인 김윤석 선생님을 만났고, 그분 권유로 선수가 됐죠. 이렇게 제 당구인생에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많아요. 이번 월드컵때 연락을 많이 주셨는데 답장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이 자릴 빌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이어 강민구는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우선 당장의 목표는 2~3년 안에 국내랭킹 30위 안에 드는 것입니다. 당구인생 통틀어선 이름만 들어도 제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성공한 당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조금 늦게 선수로 재등록한 만큼 피나는 노력을 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MK빌리어드뉴스 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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