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국내 랭킹)1등을 할 거라는 얘기를 지겹게 듣는데 실제로는 1등 근처에 없었다”며 “우승 한번, 그리고 예탈(예선탈락), 예탈, 예탈 그러다 또 우승 한 번 하고…그러길 반복하니까 항상 7~8위권에 머물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런 그에게 힘이 된 건 역시 가족이었다. 조재호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고 랭킹이 차츰 올라 2009년에 1위를 찍고, 그 이후로 3등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큰 힘이 되는 가족에게 늘 고맙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리틀 쿠드롱이라고 부르지 마라, 나는 슈퍼맨!”
조재호만큼 많은 별명을 가진 선수도 드물다. 경기 진행 속도가 빠른 그에게 일본 팬들은 ‘신칸센’, 프랑스 팬들은 ‘떼제베’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공격적인 스타일 때문에 ‘스나이퍼’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 중에서도 조재호는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가장 선호한다. 그는 “언젠가 우승할 때 입었던 옷에 슈퍼맨 로고가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해설 위원들도 슈퍼맨, 관중들도 슈퍼맨이라 불러준다”며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반면 그는 “리틀 쿠드롱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 아지피(AGIPI) 4강전 쿠드롱과의 대결을 앞두고 ‘리틀 쿠드롱 파이팅’이란 문자를 받았던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리틀 쿠드롱이 어떻게 쿠드롱을 이기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리틀’은 유망주나 갓 시작한 사람에게 쓰는 단어인데, 같이 정상을 다투는 선수한테 리틀이라 부르면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명우 예도 들었다. 그는 “명우한테 (사람들이) ‘리틀 조재호’라고 하는데, 몇 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그렇게 부르면 명우도 기분 나쁠 것”이라며 새로운 별명을 붙여줘야 한다”고 했다.
▲조재호에게 4대 천왕이란…
슬그머니 4대 천왕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는 대뜸 초구 얘기를 꺼냈다. 초구는 두께 등 정답이 정해져 있는데, 모든 포지션의 공을 초구화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 “현재 저에게 정답이 50개 있으면, 쿠드롱한테는 100개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재호와 쿠드롱은 열두 살 터울로 띠 동갑이다. 그는 “12년 후의 조재호는 현재의 쿠드롱보다 잘 치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4대 천왕의 경기 스타일은? 그는 “‘이 정도면 공격해야 하는 거 아냐?’하는 시점에 방어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했다. 굳이 나누자면 4대 천왕 중 쿠드롱 외 나머지는 방어적인 스타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는 “브롬달은 디펜스 플레이에 굉장히 능하다”며 “야스퍼스는 스트로크 준비 시간이 길다고 알려졌는데, 인터벌이 긴 게 아니라 신중한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혹시 경기 중에 불편한 선수는 없을까? “평상시에는 천사처럼 좋은 사람인데, 시합때만 되면 돌변하는 사람이 있다. 쇼맨십인 것처럼 하면서 상대선수를 약 올리는 선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를 꼽는다면, 쿠드롱, 브롬달, 최성원? 아니었다. ‘자신보다 평가가 절하된 선수’라고 단언했다. 소위 결과가 뻔히 보이는 시합이 선수들에겐 가장 힘든 시합이라는 것. 특히 그는 “어린 선수와 시합하는 게 제일 어렵다”면서 “어린 선수한테 지면 끝이다, 밀리기 시작하면 배톤 터치를 해야 하는 압박을 느끼니까”라고 밝혔다.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 ‘환경을 즐기는 편’이라고 설명한 조재호는 “시합을 할 때 관중이 몰리기 시작하면 공이 잘 맞는데, 관중이 줄거나 하면 또 잘 안 된다”며 웃었다. 또 “대개, 선수들은 지켜보는 눈이 많아지면 부담이 커져서 실수를 하는데, 상대의 그런 실수가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다.
시원시원한 공격 스타일로 조재호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중에서도 베트남에서 인기가 가장 좋다. 덕분에 그는 호치민 월드컵에선 단 한차례도 1회전에서 탈락한 적이 없다. 조재호는 “베트남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주니 비교적 경기가 잘 풀린다”고 말했다.
조재호가 베트남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 2009년 호치민 아시아인도어게임 때의 일이다. 치고 나서 큐를 재빨리 빼는 와중에 공이 큐에 살짝 스쳤는데 심판이나 상대선수도 이를 못 봤다. 소위 ‘투터치’라는 파울을 범한 것. 조재호는 “내가 사실대로 얘기하고 큐를 내려놓으니 심판이 관중들에게 자세히 상황을 설명했다, 사정을 알게된 관중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쳐줬다”고 회상했다. 그 후로 베트남 가면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어느 선수보다도 관중과 호흡하는 경기를 즐기는 조재호다. 과연 불편한 관중은 없었을까. 그는 “어느 경기에선 아예 제 뒤쪽에 자리 잡고 공을 치자마자 ‘짧다’, ‘길다’ 읊조리는 관중이 있었다”며 “너무 신경 쓰여 참다못해 심판에게 항의해 자리를 옮겨달라고 한적 있다.”고 밝혔다.
조재호는 “한국의 당구관전문화도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조용한 관전태도, 선수들의 샷마다 ‘훈수’와 함께 나오는 핑거스냅 등은 선진 관전문화와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선수가 준비동작에 들어간 순간부터 샷을 할 때까지만 조용히 해주시고, 그 외에는 시끄럽게 해주셔도 경기에 지장이 없다”며 “외국에선 어떤 공을 쳐도 박수를 받는데, 유독 한국 사람들만 박수와 함성에 박한 것 같다”고 했다.
조재호는 국내 선수중 ‘횡단샷의 1인자’로 꼽힌다. 그런 그가 최근 경기에서는 횡단샷 빈도가 줄었고, 성공률도 약간 내려왔다. 동호인들이 궁금해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조재호는 “원래 너무 쉽게 쳤던 것들이 자꾸 안 맞기 시작해서 요즘은 잘 안 친다”고 크게 웃고는 “횡단으로 칠 때에는 좀 덜 째려봐 달라”고 관중들에게 애교 섞인 부탁을 했다.
[MK빌리어드뉴스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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