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심판과 감독들이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MK스포츠 취재 결과 9월 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심판과 감독들의 비공개 간담회가 열린다. 심판과 감독들이 판정과 관련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자는 취지다.
축구계 관계자는 “참석 대상은 심판과 K리그1, 2 모든 감독”이라며 “단, 자율 참석으로 개인 일정이 있는 분은 불참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잦아진 오심 논란으로 급작스럽게 마련된 자리는 아니다.
축구계 관계자는 “지난해를 비롯해 보통 연간 1회씩은 심판과 감독들이 간담회를 통해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MK스포츠 취재 결과 올해 심판과 감독들의 간담회엔 불참자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MK스포츠는 K리그(1·2) 구단 대표이사, 단장, 감독, 코치, 프런트 등 다양한 직책을 가진 프로축구 산업 종사자 총 23명(1구단 복수 관계자 포함)에게 이번 간담회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모든 구성원이 익명으로라도 의견을 내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특히나 감독들은 심판에 관한 의견을 내는 걸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K리그에선 심판 판정과 관련된 부정적인 언급을 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는 까닭이다. ‘혹시라도 자기가 속한 구단이 특정되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MK스포츠는 직책을 제외한 알파벳순으로 몇몇 축구계 산업 종사자의 의견을 정리해 봤다.
A 씨는 “일관성 없는 심판 판정이나 오심 후의 대응을 보면, K리그에 불만이 없는 팀이나 지도자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서 불만을 내비치기도 어렵다. 시즌 중 가장 중요한 시기다. 혹시라도 구단에 악영향을 끼칠까 두려움이 크다. 심판을 향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심판이 먼저 자신들을 향한 불신이 왜 커지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장에선 늘 소통을 거부하고, 불만을 표출하면 권위로 찍어 누르던 심판이 갑자기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자’고 하면 어느 누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겠나. 심판들이 현장에서 진정으로 판정 문화 개선의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이런 자리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B 씨는 “지금껏 이런 자리가 없었던 게 아니다. 감독, 심판 등 축구인들이 골프 행사 등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그렇게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서 ‘판정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나’부터 돌아봐야 한다. 진정으로 판정 개선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할 거라면, 구단 대표이사, 감독, 팬 등을 공개된 장소에 모아놓고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형태는 다 비공개 아닌가. 투명하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개선점을 가져갈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K리그 판정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건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C 씨는 “이런 자리를 통해 조금이라도 변하는 게 있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할 것”이라며 “냉정하게 간담회를 통해서 심판 판정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판의 수준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단 1%도 발전된 게 없다. 8월 10일 전남 드래곤즈와 천안시티 FC와의 맞대결에서 발생한 오심은 놀라웠다. 육안으로만 봐도 오프사이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지만,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이 오심은 승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더 놀라운 건 이 오심을 기계 탓으로 돌렸다는 거다. VAR(비디오판독) 결함으로 판독할 수 없으면, 원심을 유지하는 게 규칙 아닌가. 덧붙여 심각한 오심을 범한 심판들에게 어떤 징계가 내려졌나.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현장에 계속 투입되고 있다. 개선의 의지나 여지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는 게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D 씨는 “15일 FC 안양과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에서 발생한 두 오심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신했다. 판정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애매하다. 똑같은 장면인데 그때그때 판정이 다르다. 심지어 주심, 부심, VAR실, 심판평가관의 의견이 천차만별이다. 인간이라서 오심을 범할 순 있다. 그런데 실수는 한두 번일 때나 실수다. 지금껏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제대로 된 징계조차 내린 적이 없는데 무슨 간담회를 하나. A매치 휴식기를 활용해서라도 판정의 명확한 기준부터 세우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현장에서 변화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준 뒤에야 이런 자리가 의미 있을 것”이라고 했다.
E 씨는 “이런 간담회도 심판의 입맛에만 맞게 진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판정 문제가 매년 반복되는 걸 넘어섰다. 지금은 매 라운드 반복되는 수준까지 왔다.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 문제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니 불신만 계속 커진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려면,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진희 심판위원장은 엄연히 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2를 심판들의 육성 무대로 본다. 능력 있는 심판 수가 부족하면, 왜 부족한지부터 공개된 장소에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봐야 한다”고 했다.
F 씨는 이렇게 말했다.
“심판에게 징계가 내려졌을 때 손해를 언급하는 걸 보고 기가 찼다. 비용으로 치면, 구단이 1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들이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많다. 개개인 인건비로만 계산해도 심판보다 훨씬 많다. 그런 구단이 오심으로 1경기에서 패하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흐름이 꼬이면 연패, 강등이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심판만 생계를 걸고 일하는 거 아니다. 구단은 자신의 생계를 걸고 일하는 수많은 구성원이 모인 곳이다. 구단 대표이사, 단장, 감독, 코치, 선수, 프런트 모두가 1경기 결과에 울고 웃는다. 그 1경기를 위해 1주일 동안 모든 걸 쏟아낸 까닭이다. 팬들은 어떤가. 팬들은 자신들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경기장을 찾는다. 그 팬들의 시간과 비용, 상실감은 어떻게 책임질 건가. 팬들이 잦은 오심으로 K리그에 안 좋은 인식이 박혀 다신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면, 이는 또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심판위원장이 한국 심판은 육성조차 제대로 안 되는 수준까지 와 있다는 걸 자인했다. 진짜 제대로 된 논의가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다. 심판을 향한 극도의 불신은 K리그 인기에 찬물을 끼얹어 빠른 관중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그러고 있다.”

심판을 향한 불신이 이토록 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MK스포츠 취재 중 많은 이들에게 공통된 주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각 구단은 8월에 있었던 불만스러운 판정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 얘기를 축구계 어디서도 할 수 없다’는 게 구단들의 큰 불만 중 하나였다.
G 씨는 “K리그 판정엔 명확한 규정이 없다. 2경기에서 팔꿈치로 상대 선수를 가격한 장면이 반복해 나왔다고 치자. 누군가는 가격한 선수에게 옐로카드를 주고, 또 다른 심판은 레드카드를 준다. 구단은 이해하기 힘든 판정 기준을 물어볼 수도 없다. 심판위원회에 질의를 하면, 제대로 된 답변을 받기도 어렵다. 구단들이 이의를 제기했다가 혹여나 심판의 심기를 건드려 불합리한 판정을 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게 정상적인 건가. 꽉 막힌 구조부터 바꾸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다. 축구계 관심이 미국으로 원정을 떠난 국가대표팀을 향해 있을 때다. 이 간담회가 애초부터 공개된 것도 아니다. 이런 간담회는 ‘자신들은 소통을 취하고 있다’는 하나의 액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 1년에 한 번뿐인 심판과 감독들의 만남 자리다. 올해는 그 자리를 향한 시선부터 너무 싸늘하다.
심판, 감독들이 모여서 비공개 간담회를 할 게 아니라 복수 구단의 주장처럼 해당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 방안을 공개적으로 찾아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판정의 명확한 기준과 투명성 확보, 심판계 구조 개선.
대다수 프로축구 종사자가 목 놓아 외치고 있는 시급한 과제다. 이 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대대적으로 논의해야만 문제 해결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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