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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신인들 키우는 66세 감독 …'화수분 야구' 꽃폈다

만년 꼴찌를 1위로…김경문 한화 감독 '아버지 리더십'
문동주·김서현·문현빈 등
20대 선수들 과감하게 기용
탄탄한 투수력·기동력 확보
33년만에 전반기 리그 평정
잔소리 없는 조용한 리더지만
칭찬 쏟아내고 실수는 감싸
김경문 감독

  • 김지한
  • 기사입력:2025.07.07 17:30:27
  • 최종수정:2025-07-07 23: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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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BO리그 '독수리 군단' 한화 이글스가 2025시즌 돌풍을 넘어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3연승을 거둔 한화는 승률 0.598(49승2무33패·7일 현재)을 기록하면서 1992시즌 이후 33년 만에 전반기 1위를 확정 지었다.

한화는 만년 꼴찌 팀이었다. 최근 6시즌 동안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고, 과거 김응용·김인식·김성근 등 한국 야구 명장들조차 한화에서 우승하지 못해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렸다. 오랜 부진을 딛고 올해 KBO 1위 팀으로 오를 수 있었던 비결로는 KBO리그 10개 구단 최고령 감독, 김경문 한화 감독(66)의 리더십이 첫손으로 꼽힌다. 지난해 6월, 시즌 도중 한화 사령탑에 올라 당시 최하위에 있던 팀을 탈꼴찌(8위)시켰던 김 감독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단을 언제나 이길 수 있는 팀으로 바꿔놨다.

올 시즌 한화 구단의 주요 지표를 보면 지난해보다 모두 나아졌다. 팀 평균자책점은 리그 1위(3.39), 최소 실점 1위(310점)를 기록 중이다. '원투펀치'로 꼽히는 두 외국인 투수 코디 폰세(11승 무패, 평균자책점 1.95), 라이언 와이스(10승 3패, 평균자책점 3.07)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팀 타율도 지난해 8위(0.270)에서 6위(0.256)로 소폭 상승했고, 지난해 9위(69개)에 그쳤던 팀 도루는 올해 전반기에 일찌감치 작년 개수를 훌쩍 뛰어넘으며 4위(73개)로 올라섰다. 김 감독이 탄탄한 투수력과 기동력을 팀 컬러로 재편시킨 결과가 1년 만에 나타난 셈이다.

김 감독이 한화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60대 리더십이 현대 야구에서도 통할까"라는 비판이 나왔다. 두산(2003년 10월~2011년 6월), NC(2011년 8월~2018년 6월), 야구대표팀(2008년 베이징올림픽, 2021년 도쿄올림픽) 감독을 역임했던 베테랑 지도자였지만 프로야구 우승 경험이 없고, 3년여 동안 현장을 떠나 있던 터라 한화를 얼마만큼 새롭게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더 컸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이기는 야구를 하겠다. 한화를 진짜 강팀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1년 새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김 감독은 "내가 해온 게 있고, 한화의 장점도 있다. 이를 섞어 멋지게 팀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김 감독은 조용한 카리스마형 지도자다.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과감한 결단과 뚝심을 앞세워 선수단을 장악했다. 이는 두산, NC 감독 시절 보여줬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고집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한화가 갖고 있던 잠재력에 숨통을 불어넣기 위해 이름값 있는 고액 연봉자 대신 팀에서 자체적으로 키우고 있던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앞세우고 기용했다. 투수 문동주(22)와 김서현(21), 타자 문현빈(21) 등 신인 드래프트로 한화에 있던 20대 초반 자원들이 김 감독 철학에 따라 중심 선수로 떠올랐다.

2022시즌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을 받았던 문동주는 올시즌 6승3패, 평균자책점 3.63을 기록하면서 한화 선발진 중 한 축을 당당히 맡고 있다. 또 2023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김서현은 올해 마무리로 보직을 옮긴 뒤 21세이브를 올리면서 확실한 구원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24시즌 2라운드 11순위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던 문현빈은 올해 타율 4위(0.317)로 한화 타선을 이끄는 '프랜차이즈 중심 타자'로 떠올랐다.

김 감독이 한화의 젊은 선수들을 과감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데는 과거 경험이 큰 몫을 했다. 두산 감독 시절, 주전 선수 외에도 비주전급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면서 재임 기간 내내 탄탄한 전력을 구축했다. NC 감독 시절에는 창단 팀 혜택에 따라 시행됐던 특별지명 선수 제도를 과감하게 활용했다. 나성범, 박민우 등을 주전급 선수들로 키워 팀을 단번에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야구계에서 선수 육성 시스템을 빗대 '화수분 야구'라는 수식어가 나온 것도 김 감독 때문이었다. 한화에서는 신인 드래프트로 뽑혔던 잠재력 있는 선수들을 성장시키면서 또다른 '화수분 야구'를 꽃피워 가고 있다.

젊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데는 김 감독이 보낸 두터운 신뢰가 큰 몫을 했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은 선수들을 따뜻하게 챙겨주는 아버지로 변신한다.

최근 성적이 신통찮은 선수들을 향해서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하고 있다"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시즌 타율 2할대 초반(0.228)에 불과한 국내 홈런 1위(17개) 노시환을 두고 김 감독은 "타율에 신경 안 써도 된다. 시환이만큼 수비 이닝을 길게 소화해 준 선수가 없다"고 감쌌다. 지난 3일 NC전에서 1경기 사사구 4개로 연장 10회에 1점을 내준 마무리 투수 김서현을 두고서도 "김서현이 그동안 90% 이상 잘 해줬다. 올해 처음 마무리 투수를 맡아준 덕에 팀도 선두까지 오를 수 있었다"며 격려했다.

김 감독의 팀 운영도 돋보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력 선수가 부상, 부진 등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 대체할 선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올 시즌에는 단 4명만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KBO리그 10개 팀 중 가장 적은 수준이다. 손등 부상으로 팀에서 빠진 외국인 타자 에스테반 플로리얼을 대신해 지난달 22일 연봉 5만달러(약 7000만원)에 대체 선수로 발탁된 루이스 리베라토는 4할대 타율(0.420)을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승부처에서 맹타를 휘둘러 팀의 새로운 '복덩이'로 떠올랐다. 김 감독은 "(리베라토가) 좋은 타이밍에 활약을 해준다. 홈런보다 더 귀중한 타점을 내줘 굉장히 고맙다"고 칭찬했다.

1999년에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한화는 21세기 들어 첫 정상을 노린다. 김 감독도 프로야구 감독을 맡고 16년 만에 첫 우승을 노린다. 시즌 중반까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한화는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각오다. 노시환은 "감독님이 가을 야구가 아닌 1등을 목표로 하자고 하더라. 지금처럼 앞으로 (선두를) 잘 지켜내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승부는 7, 8월을 넘어 끝까지 길게 갈 것이다. 아직 (추격하는 팀들과) 4~5경기 차이라 아무도 모른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한화는 8~10일 대전에서 지난해 통합 우승팀이자 올시즌 4위에 올라 있는 KIA와 전반기 마지막 3연전을 치른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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