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다저스가 마침내 침묵을 깬다.
‘LA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19일(이하 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홈경기 도중 다저스 구단 대변인의 말을 빌려 다저스 구단이 하루 뒤 “최근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영향을 받은 이민자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 계획을 공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어난 사건’들이란 최근 로스앤젤레스 지역 사회를 불안에 떨게 만든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강압적인 불법 체류자 단속, 그리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말한다.

ICE의 강압적인 단속이 이어지면서 이에 저항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주방위군 투입에 이어 해병대까지 동원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이민자들의 비중이 큰 LA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지만, 다저스 구단은 이 문제에 관해 철저하게 침묵했다.
현안에 대한 언급 자체를 꺼리는 모습이었다. 경기 도중 전광판에 비춰진 팬이 ICE에 항의하는 문구를 공개하자 바로 화면을 전환하기도 했다.
구단이 문제를 외면하자 데이브 로버츠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모습이었다.
로버츠 감독은 “솔직히 말하면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일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적인 답변을 할 수 없을 거 같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회피할 수는 없었다. 지난 15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홈경기 식전행사에서 벌어진 사건 하나는 다저스 구단의 미온적인 자세에 대한 비난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식전행사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기 위해 나온 라틴계 가수 네자는 이례적으로 미국 국가를 스페인어 버전으로 불렀다.
이는 의도된 선택이었다. 그는 이후 ‘AP와 가진 인터뷰에서 국가 제창을 위해 필드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국가를 영어로 부를지, 스페인어로 부를지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관중석에 라틴계 팬들이 가득한 모습을 보고 스페인어로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자랑스러우며, 이 결정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국가를 스페인어로 부르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미국 국가의 스페인어 버전 “El Pendón Estrellado”는 미국 국가의 공식 번역 버전으로 1945년 프랭클린 D.루즈벨트 대통령이 페루계 미국인 작곡가 클로틸데 아리아스에게 의뢰해 만든 곡이다.

아무 문제될 것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다저스 구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네자의 틱톡 비디오에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다저스 관계자는 그에게 “우리는 오늘 영어로 국가를 부르기로 했다. 이같은 지시가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여기에 네자는 행사가 끝난 뒤 그의 매니저가 익명의 다저스 구단 관계자로부터 ‘다시는 다저스타디움에 초청받지 못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다저스 구단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를 부인했지만, 그에게 ‘논란은 만들지 말라’는 압박을 가했음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인 것은 분명하다.
네자의 용기 있는 선택이 결국 다저스 구단의 행동을 이끈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저스가 이 사건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영원히 침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저스는 라틴계 이민자들이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로스앤젤레스를 연고로 하며 라틴계 팬들의 많은 응원을 받고 있고, 여기에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등 많은 라틴계 선수들이 거쳐간 팀이기 때문.
선수들 중에도 이 문제에 대한 침묵을 거부한 선수가 있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유틸리티 선수 키케 에르난데스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영어와 스페인어로 “우리 나라, 우리 도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한다. 우리 커뮤니티가 폭력에 짓밟히고 비난당하고, 학대당하며 갈기갈기 찢겨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은 존중과 존엄성,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글을 남겼다.
[마이애미(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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