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의 포지션 이동이 파리 생제르맹의 중요한 길목에서 빛을 발휘할까.
최근 이강인은 파리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시즌 초반 선발로 나서며 날카로운 킥능력과 공격 조율 능력을 뽐냈으나, 시즌 후반기로 접어들며 점차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늘어났다. 동일 포지션에 우스만 뎀벨레가 최전성기를 맞았고, 브래들리 바르콜라 또한 번뜩이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시즌 이적한 데지레 두에가 터지기 시작했고, 겨울 이적시장에는 나폴리 에이스였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가 합류했다.
이번 시즌 유독 포지션 이동까지 잦았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이강인은 주로 우측 윙어로 기용하며 왼발 킥 능력을 중용했다. 그러다 이번 시즌에는 스트라이커 자리에 배치해 ‘펄스나인(가짜 9번)’ 역할을 맡겼다. 시즌 중반으로 향하면서는 공격수가 아닌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해 플레이메이커로서 기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르 아브르와 2024-25시즌 리그1 30라운드 경기에서는 오랜만에 선발 출전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됐다. 포메이션 시트상 4-2-3-1 포메이션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경기장 안 이강인은 소위 ‘6번(수비형 미드필더)’과 ‘8번(중앙 미드필더)’ 역할에 가까웠다.
이날 이강인은 두에, 바르콜라, 곤살루 하무스 뒤에서 적재적소에 패스를 찔러넣었다. 대체로 박스 앞쪽 부근까지 전진한 뒤 직접 골문을 노리기보다는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줬다. 이강인은 73분 동안 경기장을 누비며 볼터치 95회, 패스정확도 97%, 키패스 3회, 드리블 돌파 100%(3회 중 3회 성공)을 기록하며 공수 모두 좋은 활약을 남겼다.

이강인에게는 벌써 네 번째 포지션 이동이다. 윙어, 가짜 공격수, 중앙 미드필더에 이어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소화했다. 이강인은 지난 2018년 프로 무대 데뷔 후 줄곧 공격적인 역할을 맡았다. 발렌시아, 마요르카 모드 공격적인 재능을 높게 평가했었다. 그러다 이번 르 아브르전에서 3선에 배치돼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강인의 3선 배치가 낯설지는 않다. 지난달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오만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7차전에서 비슷한 위치에서 뛰었기 때문이다. 당시 벤치에서 경기를 출발했던 이강인은 백승호(버밍엄 시티)의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전반 중반 교체 투입해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서 활약했다. 당시 이강인은 자신의 강점인 킬패스로 황희찬의 선제골을 돕기도 했다.
이강인은 오만전 경기 막판 발목 부상을 당하며 경기장을 빠져나갔지만, 그전까지 홍명보호의 공격을 조율하면서 활기를 불어넣었다.



파리의 루이스 엔리케 감독는 이강인의 3선 활약에 만족감을 보였다. 프랑스 유력지 ‘레퀴프’ 등 현지 언론은 이강인의 포지션 변화에 대해 질문했고, 엔리케 감독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강인은 그 자리에서 다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이강인 시프트’를 예고했다. 엔리케 감독은 “3선은 이강인에게 이상적인 자리가 아니지만, 선수들을 편안한 곳에서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의 정신적인 강인함을 보여주길 원한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좋아하지 않은 포지션이라고 할지라도 선수들은 그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어쩌면 파리에서 ‘이강인 시프트’는 성공적일 수 있다. 현재 공격진에는 두에, 바르콜라, 뎀벨레 등 빠르고, 침투에 강한 선수가 많다.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킥을 보유한 이강인이 또 다르게 쓰임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현재 파리는 리그앙과 트로페 데 샹피옹(프랑스 슈퍼컵) 우승을 차지한 상황,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과 쿠프 드 프랑스 결승을 남겨두고 있다. 중요한 길목에서도 엔리케 감독이 변화를 가져갈지 주목된다.

[김영훈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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