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위 실력으로 PBA 데뷔전서 7연승 우승
‘심야경기’ 걱정도 기우…피로 기색없이 실력 발휘
쿠드롱과 산체스 등 우승후보들이 초반에 대거 떨어졌지만, ‘베테랑’ 사이그너에게는 따로 적응할 시간이 필요 없었다.
사이그너는 올해 한국 나이로 59세(64년생)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새벽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에도 유감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다. UMB(세계캐롬연맹) 시절 초반에 치고 나가다가 후반에 급격히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이던 그다.
사이그너가 프로당구 데뷔전인 23/24시즌 PBA개막전을 우승으로 장식했다. 이번 시즌까지 조재호와 스롱피아비를 포함해 적지않은 선수가 PBA와 LPBA에 데뷔했지만, 사이그너처럼 드라마틱한 데뷔전을 치른 선수는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 사이그너는 128강부터 시작해 결승까지 한수 위 기량을 과시하며 7연승을 기록했다.
128강전에선 한 차례 PBA투어 우승을 차지한 강호인 서현민을 상대했다. 결과는 세트스코어 3:0으로 사이그너의 무난한 승리였다.
조건휘와의 64강전은 준결승(박인수)과 더불어 사이그너에게 이번 대회 가장 큰 고비였다. 세트스코어 2:2에서 승부치기로 넘어갔고, 승부치기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공’은 조건휘 몫이었다. 조건휘는 1득점 후 수비에 염두를 뒀으나 애매했다. 사이그너는 뱅크샷으로 가볍게 해결하며 64강을 통과했다. 이때 조건휘가 보다 철저하게 수비를 했다면 우승자는 달라졌을 것이다.
32강전(김남수), 16강전(엄상필)을 각각 3:0, 3:1로 이기고 8강전에서 만난 상대는 다비드 사파타. PBA 네 시즌 동안 우승2회, 상금 랭킹2위(1위 쿠드롱)를 기록한 강호로 컴퓨터처럼 정교한 샷이 주무기다. 그러나 사이그너는 장타를 앞세워 세트스코어 3:1로 승리했다.
4강전 상대는 지난 시즌까지 팀리그 크라운해태에서 활약했던 박인수. 8강전에서 조재호를 꺾고 기세가 오른 상태였다. 그럼에도 객관적인 전력상 사이그너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사이그너는 첫 세트를 내줬지만, 2~4세트를 내리 따내며 단숨에 세트스코어 3:1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박인수가 거세게 추격하며 세트스코어 3:3이 되면서 승부는 7세트로 넘어갔다. 그러나 7세트 막판 박인수가 결정적 뱅크샷 미스를 범하며 사이그너 발길은 파이널로 향했다.
결승전은 예상과 달리 싱겁게 끝났다. 4세트 통틀어 2시간이 채 안걸렸다. 3세트만 박빙이었고, 나머지는 일방적이었다. 2세트는 15:0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루피 체넷(32강) 강동궁(16강) 팔라존(8강) 등 강호들을 잇따라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 이상대는 마지막 무대에서는 다소 힘에 부쳐보였다.
이번 PBA 개막전을 앞두고 여러 관전포인트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사이그너의 PBA 적응여부였다. 그는 UMB 세계랭킹 10위로 이미 3쿠션월드컵을 7회나 우승한 레전드다. PBA에서는 쿠드롱과 산체스만이 그보다 3쿠션월드컵 우승횟수가 많을 뿐이다.
그런 그가 왔으니 많은 당구팬이 그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준결승과 결승전 실시간 유튜브 시청자수가 3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낯선 테이블과 공, 경기장 환경 그리고 뱅크샷 2점제 등 PBA 룰 등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밤 11시에 시작,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1박2일 경기패턴도 ‘환갑’을 앞둔 사이그너에게는 쉽지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동기생’인 산체스와 초클루, 최성원 이충복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며 첫판(128강전)부터 나가 떨어졌다. 아마 이 부분도 사이그너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이 됐을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생소한 환경에 곧바로 적응했고, ‘심야경기’에서도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사이그너는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치른 PBA데뷔전에서 끝끝내 살아남아 최종 승자가 됐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 그리고 쇼맨십. 단, 한 경기만으로는 섣부르지만 어쩌면 사이그너는 PBA에 최적화된 선수가 아닌가 싶다. [차승학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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