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 학부모들이 수학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수학은 입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일 뿐 아니라 단기간 공부로는 성과를 내기 어려워 수많은 '수포자'를 양산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나름 아이의 수준에 맞춰 잘 지도하고 있던 학부모들도 옆 친구가 이미 미적분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아이만 뒤처진 건 아닌지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행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성적이 곧장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전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나아가는 선행은 독이 된다. 한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쌓아갈 때, 선행은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다.
선행학습은 학생이 앞으로 배우게 될 내용을 미리 접함으로써 학습 부담을 줄이고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선행이 '기본 개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연습' 없이 이뤄질 때 그것은 오히려 공허한 반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고등학교 2학년 수학까지 진도를 나갔다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내신 시험에서 출제되는 까다로운 문제를 못 푸는 사례가 적지 않다. 대수 과정을 학습할 때도 공통수학1 내용을 이미 잊어버려 원활한 접근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겉보기에는 고등 과정을 빠르게 배우고 있는 듯하지만, 중등 함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라면 고등 과정에서 등장하는 그래프 해석, 극값 개념, 변화의 수식 표현 등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다. 이런 경우 선행은 실력을 높이기보다 불완전한 지식 위에 더 복잡한 지식을 쌓는 일이 된다.
심화학습은 단순히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 기본 개념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응용해보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심화 없이 선행을 나가게 되면 단순히 계산 방법을 익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통수학까지 진도를 나갔다고 말하는 학생들 중에도 정작 공통수학 모의고사 4점짜리 문항은커녕 그와 관련된 중3 수준의 이차함수 심화 문제조차 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때 배우는 정비례와 반비례 개념을 단순한 계산 문제로만 익힌 학생과 그래프의 의미나 실생활에서의 적용 사례까지 고민해본 학생은 이후 고등 수학에서 '함수의 정의' '변화율' '기울기' 같은 개념을 받아들이는 깊이가 다르다.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적분을 선행한 학생이라 해도 기본적인 함수의 극한 개념이나 도함수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 풀이에만 집중했다면 수능에서 출제되는 고난도 문제 앞에서는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빠르게 배우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심화 없이 선행만 하는 것, 그리고 선행을 실력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문제를 보고 "이건 외운 대로 푸는 거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아직 개념이 '자기 것이 되지 않은' 상태다. 반면 "이건 왜 이렇게 풀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아이는 느릴 수 있어도, 결국 오래가고 깊이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된다. 깊이 있는 심화학습은 바로 이런 생각을 가능하게 하며, 진정한 선행은 심화를 통해 탄탄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속도가 실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수학은 생각의 깊이만큼 실력이 자라는 과목이다. 선행은 심화의 토대 위에 있을 때 진짜 힘을 발휘한다. 똑같이 중3 수학까지 진도를 나간 학생이라도 심화를 제대로 진행한 학생은 공통수학1 과정을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 심지어 심화 없이 공통수학1 진도를 나간 학생보다 더 빠르게 고등수학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다.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건, 빠른 진도가 아니라 깊은 이해다. 지금 당장 얼마나 앞서 나갔느냐보다 얼마나 단단히 다졌는가이다. 심화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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