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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초고액 과징금으로 산재 줄인다 … 기업 "처벌보다 예방"

정부, 내달 노동안전대책 발표
현행 산업안전법 위반때 벌금
평균 120만원, 실효성 적어
과징금 부과 매출연동 등 검토
중대재해법 시행 3년지났지만
산재 사망 발생은 되레 늘어
경총 "산업정책 고비용저효과"

  • 최예빈/추동훈
  • 기사입력:2025.08.13 17:56:10
  • 최종수정:2025-08-13 19:2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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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공화국'이라는 오명에 칼을 빼든 정부가 반복해서 중대재해를 낸 기업에 초고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법 시행에도 산재가 끊이지 않자, 실효적 제재를 통해 기업의 안전불감증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기업들은 산업재해를 막으려면 처벌이나 제재를 강화하는 것보다 안전 기준 실효성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자는 14만2771명으로 4년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산재는 줄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사고 사망자는 2021년 828명에서 지난해 827명으로 비슷한 데다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고 사망자는 법 시행 전인 2021년 248명에서 2024년 250명으로 오히려 늘었다는 설명이다. 사망 원인 역시 떨어짐·끼임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여전히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고용부는 이를 근거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안전·보건 조치 위반에 대한 과태료 부과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과태료·과징금 부과 방안은 오는 9월 발표될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포함될 예정이다.

또 고용부는 안전보건조치 위반에 대한 벌칙을 현행 벌금에서 과태료로 전환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위반해 여러 노동자가 반복해서 숨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경제적 불이익을 대폭 강화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권창준 고용부 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산안법을 위반해 형사처벌을 받으면 평균 벌금액이 120만원에 불과해 실효성 있는 제재냐는 논란이 있다"며 "과태료가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고, 여러 위반행위에 중복 부과할 수 있어 실효성 있는 조치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과징금 부과 제도를 신설하는 데 대해선 아직 명확하게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다. 법 근거를 산안법에 둘지, 중대재해처벌법에 둘지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겠다는 방침이다. 과징금 규모는 정액으로 하는 방식과 매출액에 대해 일정 비율로 하는 방식 등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면서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주문한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은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에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배상 책임을 진다'고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제도를 신설하는 이유에 대해선 "현재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를 본 근로자와 기업 간의 관계이고, 과징금은 행정적 제재라 역할이 다르다"고 권 차관은 답했다.

이번 대책을 촉발한 포스코이앤씨의 소급 적용 여부에 대해선 "개선할 제도 일부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한 포스코이앤씨 등에 소급할 수도 있겠지만 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를 저격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질문엔 "포스코 사태는 상징적 사건이었고, 정부가 준비 중인 전체적 대책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차관은 "연말까지 반짝하고 마는 게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산재사고사망만인율은 0.39‱로, OECD 평균인 0.29‱보다 크게 높았다. 이에 중대재해 예방 5개년 계획 수립 및 이행을 점검·평가하고, 현장 모니터링과 관리·연구 기능을 수행할 '상설특별위원회' 설립 방안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산재예방 정책 개선 토론회'를 개최하고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의 실효성 강화 방안과 새 정부의 정책과제를 논의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첫 번째 발제에서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 정책은 과도한 제재 중심으로 '고비용 저효과' 구조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예방 중심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제도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중처법 시행 이후 감독관 수와 예산이 늘었지만, 중대재해 사망자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시스템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용윤 동국대 산업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내몰린 중소기업엔 규제 중심의 산재예방 정책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 교수는 "중소기업 안전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범부처 통합 지원 체계가 시급하며, 안전 관리 노력에 대한 인센티브와 보상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예빈 기자 /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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