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관계 여성을 살해하고 숨진 30대 남성이 경찰의 분리 조치로 지인 집에 머물고 있던 피해자를 납치해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가정폭력 신고로 가해자와 분리되길 원했던 피해자는 경찰이 지정한 임시숙소가 아닌 지인의 집으로 대피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거처를 알아낸 가해자가 직접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1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날 화성동탄경찰서는 사망한 이 사건 피의자 A씨가 납치살인을 벌인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2일 오전 7시께 앞서 가정폭력 신고로 인해 분리 조치돼 있던 사실혼 관계의 30대 여성 B씨가 3월부터 지내온 화성 동탄신도시 오피스텔로 찾아갔다.
A씨는 오피스텔 공동현관문 옆에 적힌 비밀번호를 눌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 대기하면서 B씨가 외출하기를 기다렸다.
이어 오전 10시 19분께 때마침 외출하기 위해 집을 나선 B씨를 제압한 뒤 자신이 타고 온 렌터카에 강제로 태웠다.
A씨는 B씨의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두건을 씌웠으며, 양손을 묶어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그는 차를 몰고 6㎞가량 떨어진 화성 동탄신도시 내에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아파트 단지로 이동, B씨를 내리게 했다.
A씨는 오전 10시 41분께 B씨를 끌어내려 집으로 가던 중 B씨가 달아나자 곧바로 뒤쫓아 가 아파트 단지 내 주민 통행로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A씨는 범행 후 아파트 자택으로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흉기에 찔린 B씨를 본 주민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현장에 출동해 B씨를 병원으로 옮기는 한편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B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은 CCTV 분석 등을 통해 A씨가 B씨를 살해한 후 자택으로 달아난 것을 확인하고, 집 현관문을 개방해 오전 11시 35분께 사망한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유서에 가족과 지인들에게 남기는 말을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후속 수사를 통해 B씨가 A씨를 여러 차례에 걸쳐 신고한 이력 및 A씨가 분리 조치된 B씨를 살해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정황을 파악했다.
조사 결과 이 사건 피해자 B씨는 총 세 차례에 걸쳐 A씨를 신고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첫 번째 신고는 지난해 9월로, B씨는 “남자친구(A씨)가 유리컵을 던졌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연인 사이에 발생한 교제폭력 사건으로 보고, A씨와 B씨를 분리한 뒤 B씨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하지만 B씨는 사건 이튿날 B씨가 A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고, 피해자 안전조치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은 B씨의 요청을 수용하되, 특수폭행 사건인 점을 고려해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두 번째 신고는 지난 2월로, 단순 말다툼 사건인 데다 폭행 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종결했다.
B씨 역시 안전조치 등을 거부했다.
문제는 세 번째 신고였다.
B씨는 지난 3월 3일 “A씨에게 폭행당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앞선 사건보다 사안이 중하고, B씨가 피해를 호소함에 따라 100m 이내 접근금지 및 전기통신을 이용한 연락제한 등의 ‘긴급임시조치’를 했다. 스마트워치도 지급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보호 임시숙소’에 입주할 것을 권유했으나, B씨는 “지인의 집에 머물겠다. A씨가 그곳 주소를 모르고 있다”며 지인의 오피스텔을 거처로 삼았다.
이후 두 달 이상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A씨가 B씨를 찾아가 납치살인을 벌이게 된 것이다.
B씨에 대한 피해자 안전조치를 담당한 경찰관은 “피해자에게 임시숙소를 적극 권유했는데, 그는 ‘대피할 주거지가 있다’며 거부했다”며 “3월 신고 이후 매주 한 차례 피해자에 대한 모니터링했고, 가장 최근인 지난 8일에도 안전을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사건 당시 B씨는 경찰로부터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찬 상태가 아니라 가방 속에 넣어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스마트워치가 정상 작동하는 점에 미뤄 B씨가 미처 스마트워치를 통한 신고를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수사 결과대로라면, 피해자가 임시숙소 입주를 거부한 채 지인의 오피스텔로 대피해 결국 주소가 노출됐고, 사건 당시에는 가방 안에 있던 스마트워치를 누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복 범죄로 인한 가정폭력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온 점을 고려하면, 경찰의 피해자 안전조치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피해자의 주거지를 알아낸 정황 등을 계속해서 수사해 나갈 것”이라며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와 PC 등을 포렌식 해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수사할 방침이다. 다만 A씨의 사망으로 인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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