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그늘이 독서 시장도 강타하고 있다. 책값 부담을 한 푼이라도 줄이려는 이들이 저렴한 중고 서적을 찾고 있고, 새 책을 산 이들도 ‘딱 한 번’ 보고난 뒤 이를 중고로 되팔아 책 구입 비용 중 일부를 바로 회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속형 애독자’들이 늘어나며 결과적으로 한 권의 책을 여러 명이 돌려보는 꼴이 되면서 도서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 신간 판매량 감소에 따른 위기의식을 느낀 일반 서점들도 중고 서적 취급을 점차 늘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31일 서울 관악구의 한 기업형 중고 서점에선 직원이 비닐에 포장된 깨끗한 책을 ‘새 책 코너’에 진열하고 있었다. 이 코너에서는 발간 후 1년이 되지 않은 책을 ‘중고책’이란 명목으로 정가보다 최대 30%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이날 중고 서점을 찾은 유 모씨(24)는 ‘소득혁명’(2024년 12월 발간), ‘미로 속 아이’(2024년 12월 발간) 등 신간 3권을 구매했다. 그는 “책값 부담이 만만찮아 중고 서점을 자주 온다”며 “중고 서점에서 중고 서적뿐만 아니라 신간도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책 구매 방식이 바뀌는 데는 급등하는 도서 가격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3년 발간된 도서의 평균 가격은 1만8633원으로 2022년 1만7869원보다 4.3% 상승했다. 알라딘 관계자는 “출판을 위한 자재비, 유통비, 인건비 등이 모두 오르며 올해도 책값은 꾸준히 오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중고 서적 수요를 감당할 만큼 공급량도 늘어나고 있다. 책을 사서 보유하기보다는 한 번 읽고 되파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직장인 김우섭 씨(39)는 “독서가 취미인데 새 책은 사면 최대한 빠르게 읽고 다시 판매한다”며 “중고 서점이 제일 거래하기 편하고, 상태가 좋은 책은 정가의 90%까지도 값을 쳐주는 경우도 있어서 주로 서점과 거래한다”고 말했다.
서점들의 판매 전략도 바뀌었다. 중고 서점은 신간 코너를 확장하고, 일반 서점은 중고책 판매 매대를 늘리며 중고 서점과 일반 서점 간 경계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서울 방배동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변 모씨(43)는 “매장에서 책을 읽다가도 가격이 비싸서 구매하진 않는 손님이 많다”며 “손님들 기대에 맞춰 우리 책방에서도 저렴하게 중고 책을 매매할 수 있나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행 도서정가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반 서점에서 책 할인율은 정가의 15%로 제한돼 있다. 반면 중고 서적 할인율에는 제한이 없다. 새 책을 외면하는 현상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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