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과잉과 수요 절벽이 맞물리면서 서울 곳곳에서 오피스 건물 공실률이 수직으로 치솟고 있다. 저금리 시절 낙관적인 개발 계획은 고금리·경기 침체 현실과 맞물리며 '입주 절벽'에 직면했다. 이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들의 도시 개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 위치한 '씨드큐브 창동'은 이 같은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서울시가 동북권 광역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계획한 이 건물은 2023년 7월 준공됐지만, 준공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절반 가까이가 공실이다. 최근 방문한 B동 14층과 16층은 임차인이 아예 전무했고 입주 기업도 대부분 보험사나 소형 금융사에 머물러 청년 창업기지로 기능이 유명무실했다.
주변 중개업소에선 "위치는 역세권에 아주 좋은 편인데 역시 경기 한파에는 장사가 없지 않냐"며 "가뜩이나 경제가 안 좋은데 계엄 사태 이후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임차인들 '씨'가 말라 버렸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씨드큐브 창동의 투자 유치 기대를 키웠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노선 창동역 개발도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GTX-C노선 실착공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착공식 이후 1년 넘게 공사가 미뤄지면서 입주 희망 기업들의 계획도 흔들리고 있다. 고금리와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공사에 착수하지 못한 상태다.
서부권 업무지구 역할을 하는 마곡 역시 입주 기업 찾기에 빨간불이 켜졌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올해 1월 초 작성한 '마곡 유보지 등 개발 방안 검토 자료'에 따르면 마곡이 위치한 강서구엔 2028년까지 총 109만㎡ 업무 면적이 공급될 예정이다. 추정 수요 면적이 69만4115㎡임을 감안하면 약 58% 과잉공급될 것으로 추정된다.
가양동 CJ제일제당 용지와 등촌동, 염창동 등에도 줄줄이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시장이 극도로 침체되면서 생활형숙박시설, 물류창고와 함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3대 폭탄'으로 일컬어지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마곡과 인근 지역에 오피스 과잉공급이 예상되자 SH공사는 자체 보유하고 있는 유보지의 개발 방향 전환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기존 예정대로 해당 유보지에 지식산업센터를 대량으로 지으면 대규모 공실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에 토지 용도변경 등을 통해 산업뿐만 아니라 주거 등 다양한 기능을 복합시켜 첨단 바이오헬스 의료관광단지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처럼 용도변경을 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성격은 기업이 입주하는 오피스다. 결국 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판도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예측이다.
3대 업무지구로 불리는 도심(CBD)과 여의도(YBD), 강남(GBD) 권역도 경기 부진 등에 따른 공실 여파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심권은 세운재정비촉진구역과 양동, 서울역 북부역세권 사업 등을 통해 2029년까지 무려 55만4000여 평의 업무시설이 공급된다. 이 같은 과잉공급 우려에 부동산 서비스 기업 젠스타메이트는 2029년 서울 오피스 공실률이 무려 14%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오피스 시장도 주거 시장과 유사하게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승철 유안타증권 수석부동산컨설턴트는 "기업들이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도심과 강남 등 지역에 사옥을 두려는 수요는 꾸준하다"며 "주요 업무지구에 오피스가 대량 공급되며 외곽 지역은 임차 고객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주사 찾기가 점차 어려워지자 지자체가 용적률 인센티브를 내걸면서까지 내놨던 용지 매각도 불발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서울 은평구 옛 국립보건원 용지 민간 매각은 경쟁 입찰서를 접수받았지만 참여자가 없어 결국 유찰됐다.
서울시는 이 땅에 '균형발전형 사전협상' 제도를 최초 도입해 창조산업 거점 개발을 추진했다. 균형발전형 사전협상은 강남북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강북에 파격적으로 제공하는 규제 완화 방안이다. 민간은 현재 용도지역으로 용지를 매입하고, 이후 개발 계획 수립에 따라 지자체가 용도지역을 변경해준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은 공공기여로 환수한다.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초기 토지 매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혜택도 오피스 시장의 불확실성 아래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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