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태드-올샨스키 내기의 승자는...
세계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
역노화 연구로 미래시장 선점하자

“2150년까지 150세 넘게 장수하는 인간이 나올까.”
2000년대 초, 노화 연구자 두 사람이 이 질문으로 내기를 했다. 유명 생물학자인 스티븐 오스태드는 가능하다에 걸었고, 인구 통계학자 스튜어트 올샨스키는 불가능에 걸었다. 당시 ‘판돈’은 각각 150달러, 두 사람은 15년 뒤 150달러씩을 추가로 투자했으며 2150년 이긴 쪽의 후손이 받게 된다. 주식 시장에 투자된 판돈은 125년 후에는 천문학적 금액이 될 전망이다.
오스테드가 이기려면 올해 25세인 사람들 중에서 150세인이 나와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한 두사람이 장수하는 문제가 아니다. 전체 인구 중 70%가 110세까지 살아야 150세 인류가 나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 평균 기대수명은 83.5년이다. 평균수명 110세 시대가 되려면 최근 유행하는 저속노화를 넘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시간을 거슬러 젊어져야만 가능하다.
이준호 서울대 교수와 이승재 카이스트 교수가 대한민국을 바꿀 미래기술로 ‘역노화(reverse aging)의 꿈’을 꼽은 배경이다. 두 학자는 이를 화두로 ‘예쁜꼬마선충(C. elegans)’ 연구에 몰두해왔다.
이준호 교수는 “1989년 미국 유학시절 예쁜꼬마선충 연구를 접했고, 실험 3개월만에 ‘이 분야라면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의 예감대로 36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노화연구 강국이 됐다.
이승재 교수는 “한국은 기초연구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기초연구를 통해 축적된 원천 지식이야말로 역노화 기술의 임상 응용과 산업화를 이끄는 출발점”라며 “기초연구를 더욱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응용과 상용화를 추진한다면,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면서 전 인류의 삶의 질 향상과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역노화 연구는 이제 첫 발을 뗐을 뿐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전대미문의 길이다. 인류의 꿈인 무병장수와 불로불사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걸어볼 만 하다는 것이 과학계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산 사람은 122년 164일을 살았던 프랑스 여성이고, 2025년 기준 기네스 세계기록으로 세계 최장수 여성은 116세(올해 초 사망), 남성은 112세다.
“세계인이 꿈꾸는 회춘의 기술 찾아
‘젊어지는 알약’ 개발에 도전해보라”

“과학은 호기심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호기심에서 끝나면 안되고, 완성은 끈기로 하는 겁니다. 우리 학생들한테는 ‘덕후’처럼 매달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해요. 더구나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라면, 인류 삶에 미칠 영향과 사회적인 공론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예쁜꼬마선충 덕후’다. 예쁜꼬마선충은 세포의 분화과정을 밝히는 실험모델로 사용되어 유명해진 선형동물이다. 미국 유학 시절 처음 접한 순간 흥미를 느꼈고 30년 넘게 연구를 주도해왔으니, 호기심에서 출발해 끈기로 완성한다는 명제를 이 교수는 직접 증명한 셈이다.
지난 달 방문한 연구실에서도 그는 제자들과 어제의 연구노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연구실이 배출한 과학자들은 지렁이처럼 생긴 1mm짜리 벌레를 모시고 산다. 밤낮없이 애지중지 키워가며 다양한 가설을 시험해보는데, 연구원들은 이 벌레의 일거수일투족에 울고 웃는다. 오죽하면 실내 온도마저 사람이 아닌, 벌레가 좋아하는 20도에 맞춰져 있을 정도다.
이 교수는 “기본적인 연구 분야는 염색체 끝단에 있는 ‘텔로미어’인데, 지금은 암을 연구하고 있다”면서 “암세포는 살아남기 위해 텔로미어를 연장시키는데 이게 역노화 연구에 영감을 준다. 이 기전이 무엇인지 알아내면 종국에는 암세포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텔로미어는 ‘세포의 수명 시계’다. 세포가 노화되면 ‘운동화 끈이 닳듯’ 텔로미어가 짧아지고 결국에는 죽는다. 텔로미어를 길어지게 만들면 오래 살 수 있지 않을까. 전세계 과학자들이 일찍부터 매달린 질문이다. 이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텔로머레이즈) 연구는 2009년 노벨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텔로미어를 길게 만드는 과정에서 까딱 잘못하면 ‘암’이라는 치명적 부작용이 올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 교수는 “노화도 암도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인데 텔로미어식으로 말하자면 이쪽으로 가면 늙어서 죽고, 저쪽으로 가면 암에 걸려죽는 식”이라며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이유가 혹시 ‘암을 막기 위한 방어 기제’는 아닐까, 라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가만히 있던 텔로머레이즈가 암세포에서만 갑자기 작동을 하니, 이 효소를 공격해서 암세포를 없애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안죽는 암세포들이 있어서 보니까 원래부터 효소가 없었던 거다. 미스테리는 그런데도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라면서 “이걸 ‘대안적인 텔로미어 유지 기전’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 기전을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팀은 2023년 생쥐 배아줄기세포 모델에서 이 기전을 규명해 이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에 발표했다. 암 진단기법 확립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 연구중 하나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미래 인재들이 이 기전을 밝혀낸다면 역노화는 물론 암까지 정복할 단초를 잡을 수 있다. 우리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 교수는 “텔로미어 학회에 가면 한국인 연구자들이 별로 없다. 우리가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데도 그렇다”면서 “역노화 연구는 세계적으로 이제 첫발을 뗀 수준이고 인류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텔로미어가 아니더라도 호기심이 발동하는 어떤 분야든 10~15년을 매달려 볼 가치가 있다”고 추천했다.
그가 예비 과학자들에게 권하는 도전과제 중 하나는 ‘젊어지는 알약 개발’이다. 이 교수는 “젊은 피를 수혈해서 건강해지고 역노화가 일어난 것은 확인된 사실이므로 그 안에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서 ‘먹는 약’으로 만들면 가장 좋을 것 같다”면서 “여러 인자 중에서도 젊은 피 속의 노화 억제 물질인 플라스마 인자(Plasmafactor)일 거라고 생각하고, 이걸 먹는 약으로 개발하면 가격도 가장 싸고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외에도 노화 연구자가 점령할 영토는 무궁무진하다. 노화는 워낙 복잡한 생명현상이어서, 제대로 된 연구 표적과 지표조차 확립되어 있지 않다. 최근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노화의 지표를 표준화하는 것만으로도, 한국 과학기술계에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아주 먼 이야기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될 수도 있다.
AI와 로봇의 부상도 기회다. 조니 뎁 주연의 영화 ‘트렌센던스’에는 죽기 직전 자신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시킨 천재과학자 윌이 나온다. 이 교수는 “뇌를 디지털화해서 기계의 몸에 넣는다는 상상 많이 하지 않나. 5년 전만 해도 이런 게 가능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 세대에는 안 됩니다’ 했는데 지금은 그 말을 못한다”면서 “학계는 물론 산업계에서도 지금부터 도전해볼만한 과제”라고 추천했다.
이 교수는 특히 역노화 연구가 과학자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인문사회학자와 철학자, 의료계와 일반 국민들까지 사회 전반에 새로운 문을 열어줄 수 있어서다.
이 교수 본인도 요즘 노화 연구가 인류에 미칠 영향을 숙고하는 철학적 고민에 빠져 있다고 했다. 그는 “평균 수명이 70~80세일 때와 90~100세일 때 사회 제도는 엄청나게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연구 윤리 논란도 넘어야 할 과제다. 줄기세포와 유전자 가위 연구가 활성화되려면 지금의 규제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
최근 AI 윤리 논란처럼 과학기술 연구자뿐 아니라 사회과학자, 정책 설계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글·아마존·페이팔 창업자도 주목
국립노화연구소 만들어 R&D지원을
![이승재 카이스트 교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역노화 연구의 가치를 강조했다. [카이스트 제공]](https://wimg.mk.co.kr/news/cms/202504/21/news-p.v1.20250421.ae4a204081864e8c9d577bc41e1e68d2_P3.jpg)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세포’ 단위의 생로병사를 연구해왔다. 이제 막 ‘개체’ 수준의 역노화 연구가 시작될 참이다. 현실계에서도 거꾸로 나이드는 생물이 있을까. 있다면 그 개체를 연구해서 사람에게 적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승재 카이스트 교수는 “작은보호탑해파리(Turritopsis nutricula)나 바닷가재, 벌거숭이두더지쥐 등 몇몇 생물에게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작은보호탑해파리는 사고나 불에 타지 않는 한 죽지 않고 계속 자라다가, 상황이 안 좋아지면 다시 젊어져서 유생으로 돌아간다. 그러다가 먹을 게 생겨서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성체로 자라나 번식한다. 사실상 불로불사인 셈이다.
이승재 교수 연구팀은 예쁜꼬마선충에서 특정 RNA 조절 단백질이 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교수팀은 수컷과 암수한몸(자웅동체) 두 성별이 있는 예쁜꼬마선충의 특성을 이용해 성별에 따른 면역력의 차이를 연구했다. 이 연구는 작년 7월 국제 학술지 ‘오토파지’(Autophagy)에 게재됐다.
이 교수는 “사람이 늙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세포 안에 있는 각종 중요 물질의 손상이 누적되고, 줄기세포가 줄어들고, 염증 반응 증가,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텔로미어 단축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면서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장수비결은 식이제한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한 만큼, 이 비밀을 밝히는 데 도전해볼 만 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가적인 기초연구의 지원과 기업 차원의 산업화 노력이 역노화 산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봤다. 이 교수는 “미국 알토스랩스, 칼리코, 유니티 같은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인간을 대상으로 역노화와 항노화를 연구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아직 기술응용과 민간투자에서 격차가 큰데, 많은 기업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알토스(아마존)와 칼리코(구글), 유니티(페이팔)는 모두 빅테크 창업자들이 만든 회사들이다. 이 교수는 “각자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역노화 연구를 ‘정해진 미래’로 보고 있는 것 같다. 빅테크와 인공지능 다음의 메가트렌드는 헬스케어와 역노화 산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다.
정부 차원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R&D 투자도 필요하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장려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혁신 생태계 조성도 중요하다.
이 교수는 “미국은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국립노화연구소와 응용 연구를 지원하는 ARPA-H 노화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에도 ‘국립노화연구소’가 설립되어, 장기적 안목에서 기초연구를 체계적으로 지원한다면, 그 성과가 연계 연구와 민간의 후속 투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응용과 미래 성장동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래 인재들에게 과학의 발전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역노화 연구의 의미에 대해 강조해달라고 했다.
그는 “역노화란 단지 오래 사는 것을 넘어 ‘건강하게 나이 드는 삶의 질에 대한 도전’”이라며 “단백질 하나, 유전자 하나로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지만 다양한 기초 과학의 발전으로 퍼즐이 맞춰질 때 우리는 결국 노화를 이해하고, 미래의 건강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노화 연구의 중요한 이정표를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예쁜꼬마선충. [연합뉴스]](https://wimg.mk.co.kr/news/cms/202504/21/news-p.v1.20250421.82d56412db2d48928d47cfff07e1aae3_P1.jpg)
<용어>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
흙 속에 살면서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선충류. 성충의 크기는 약 1mm이고 자웅동체와 웅체 등 성별이 2가지이다. 알에서 부화한 뒤 성충이 되기까지 약 사흘이 걸리며 평균수명은 2∼3주이다. 배양하기 쉽고, 냉동보관할 수 있으며, 수정란에서 성체에 이르기까지 세포분열 양상이 각 개체마다 동일하고 그 과정을 현미경으로 모두 관찰할 수 있어 세포 분화과정과 노화연구에서 많이 활용한다. 2002년과 2006년, 2008년, 2024년까지 연구자들에게 총 4번의 노벨상을 안겨줬다.
<용어> 텔로미어(telomere)
우리 세포 속 DNA 끝단에 있는 대표적인 노화지표. 나이가 들수록 텔로미어가 짧아지는데, 텔로미어가 짧으면 빨리 늙고 더 빨리 죽는다. 암과 당뇨, 치매 비만 환자들은 텔로미어 길이가 짧았으며 흡연과 스트레스, 음주 등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어> 제로사이언스(geroscience)
노화 현상과 고령 질병의 관계에 대한 연구. 암이나 치매 등 한 가지 질병이 아닌 노화 과정에 중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AI의 뒤를 이을 메가트렌드로 주목받고 있으며, 미국 빅테크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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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노화 연구가 주목하는 4대 전략
1)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이는 것
2)젊은 피를 수혈하는 것
3)노화된 세포를 제거하는 것
4)줄기세포 원리를 활용해 리프로그래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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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상식 뒤집은 장수 관련 연구들
▶1930년대 : 영양실조는 단명한다? 소식해야 오래 산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양실조의 악영향을 연구하다가 상식이 뒤집힘.
-정상적으로 먹은 쥐보다 적게 먹은 쥐가 현저하게 오래 산다는 결과.
▶1961년 : 세포 계속 배양하면 불멸한다? 세포도 늙는다!
-레너드 헤이플릭 박사 ‘시네슨스(Senescence)’ 발견
-세포가 길쭉해지고 분열하지 않고, 노화된 상태로 멈춰
-노화된 세포 제거해 역노화를 유도하는 최근 연구 근간
▶1993년 : 돌연변이는 나쁘다? 장수의 열쇠일 수 있다!
-신시아 케니언 전 UCSF 교수가 네이처에 논문 발표
-예쁜꼬마선충 돌연변이 일으키자 수명 2배나 증가
▶2000년대 : 30%만 덜 먹어도 장수효과 볼 수 있다!
-사람과 비슷한 영장류도 ‘소식하면 오래 산다’ 규명
-세 끼를 두 끼만 줄여도 되므로 누구나 실천 가능한 방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