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디지털 통화 시장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양국 전략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다. 미국은 민간 사업자 중심 스테이블코인(특정 자산에 연동돼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코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 중국은 본인들이 통제할 수 있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시장 확대에 적극적이다. CBDC는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말한다. 기존 법정 화폐와 동일한 가치로 형태만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뀐 꼴이다. 발행 주체(민간 혹은 중앙은행)만 다를 뿐 스테이블코인과 CBDC는 사실상 동일한 구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두 디지털 화폐 간 ‘지위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초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리브라 프로젝트다.
2019년 6월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가 리브라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달러와 유로, 엔화 등 주요 통화에 페깅(연동)하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페이스북 메신저로 송금·결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구상. 중장기적으로는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에게 저렴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국제 송금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하지만 일각에선 리브라 프로젝트가 달러의 독점적 기축통화 지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이에 2019년 10월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청문회를 열고 마크 저커버그를 불렀다. 질타 끝에 리브라 프로젝트는 좌초됐다. 디지털 화폐의 기존 통화 대체 가능성을 본 전 세계 중앙은행은 통제 가능한 디지털 화폐 개발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떠오른 게 각국 중앙은행 중심 CBDC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을 향한 판단이 현재 CBDC 열풍 시작점인 꼴이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재 미국은 CBDC 대척점에 섰다. 스테이블코인 전도사란 별명도 붙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채 수요 확대를 위한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규모 감세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감세안은 미국 재정부채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려면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한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최근 자본 시장에서 번지는 ‘셀 아메리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Risk-free)으로 꼽히던 미국채와 달러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채 금리는 오르는데 달러는 약세를 띠는 이례적 현상까지 연출된다. 4월 2일 보편관세 10%와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해 관세 전쟁을 본격화한 뒤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4.13%에서 연 4.41%로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4.15% 하락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미국채 큰손’으로 만들 심산이다. 일반적으로 발행사는 스테이블코인 가치 유지를 위해 달러를 사서 보유하는 방법을 쓴다. 다만 달러 대신 미국채를 보유해도 큰 문제는 없다. 미국은 이를 장려하기 위한 법적 제도 마련에 나섰다. 미국 상원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과 담보 기준을 강화하고 자금세탁방지법 준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일명 지니어스 액트)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준비자산 범위도 명시했는데, 미국 법정통화, 중앙은행 예치금, 잔존 만기 93일 이내의 미국 국채(단기·중기·장기물) 등이 포함된다. 박상현 iM증권 애널리스트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양분한 USDT(테더)와 USDC가 준비자산으로 보유한 미국 국채만 1260억달러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6~12배 성장할 경우 이들이 보유할 미국채는 1조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 ‘왕좌의 게임’
논란의 테더 vs 떠오르는 USDC
스테이블코인 시장 속 패권 경쟁도 치열하다. 현재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테더다. 가상자산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6월 3일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장 시가총액은 2500억달러(약 344조원)다. 이 중 테더의 시가총액은 1532억달러다. 점유율 환산 시 61.2%다. 2015년 홍콩 비트파이넥스 거래소에 상장돼 유통된 테더는 스테이블코인의 시초격이다. 높은 점유율을 유지 중인 배경이기도 하다. 다만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유통된 만큼 숱한 논란도 안고 있다. 특히 미국은 꾸준히 테더에 대한 의구심을 내비쳐왔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23년 스테이블코인 안정성을 평가하며 “테더는 소재지가 홍콩인 데다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된 테더홀딩스가 전액 소유하고 있어 미국 기관의 규제나 감독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미국 지원에 힘입어 성장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자 입장에서 테더는 썩 마뜩잖은 선택지인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점유율 추이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월 2일 기준 스테이블코인 시장 시가총액은 2047억달러, 테더 시총은 1371억달러로 점유율은 66.9%에 달했다. 하지만 현재는 61% 안팎에 머물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USDC의 점유율은 21.3%에서 24.3%까지 올랐다. USDC는 미국 기업 서클이 발행한다.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블랙록 등 미국 금융권의 투자 유치를 받은 핀테크 업체다.
담보 자산도 경쟁 붙는다
테더 골드 존재감 확대
스테이블코인은 담보 종류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① 법정화폐 준거형이다. 달러나 미국채, 유로, 엔화처럼 법정화폐에 가치가 고정된 형태다. 테더와 서클이 여기 속한다. ② 상품 준거형이다. 금이나 은, 석유 등 원자재·실물자산을 담보로 하는 구조다. 흔히 실물자산 코인으로 불리는 RWA가 대표적이다. ③ 가상자산 담보형이다. 다른 가상자산과 가치를 연동한다. 다만 가상자산의 경우 워낙 변동성이 커 스테이블코인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널리 이용되지는 못한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①의 독점이다. 코빗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①의 점유율(시가총액 기준)은 전체 시장의 93%에 달한다. 다만 최근에는 ②의 존재감도 커지는 모양새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테더가 발행한 금 기반 스테이블코인 XAUT(테더 골드) 가격은 6월 3일 기준 3381달러다. 올해 초(2621달러)와 비교하면 28.9% 오른 수치다. 시가총액은 8억3353만달러로 원화 기준 1조1400억원대다.
테더 골드는 런던귀금속거래소(LBMA)에서 거래되는 금 1트로이온스(31.1g) 가격에 연동된다. 테더가 달러와 1 대 1로 가치가 연동되는 것과 동일한 구조다. 가치를 담보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발행사인 테더는 실물 금을 준비금으로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테더 골드 수요가 늘면 발행사가 준비해야 할 금도 많아져 금 가격을 뒷받침하게 되는 구조다. 테더는 지난 4월 발표한 1분기 확인(Attestation) 보고서에서 약 24만6500온스(약 7t) 실물 금을 스위스 전용 금고에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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