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정 이사장은 소탈하면서 꼿꼿한 모습으로 어느 때보다 지금 김 박사의 뜻을 계승할 후학의 양성을 주문했다. 그는 "김 박사의 존재를 안 것은 2024년 초"라며 "한국 산업화 시기에 경제발전 모델을 제시한 선구자였던 그를 기억하고자 공적비를 건립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단의 장학사업에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신설했다. 그가 졸업한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2의 김재관'을 발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박사가 뿌린 씨앗은 넓고 깊게 뿌리를 내렸다. 1972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초대 부소장으로 활동하면서 문을 연 무기 국산화 프로젝트가 단적인 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박격포와 로켓포, 대전차 지뢰 등의 시제품을 제작했으며, K방산의 효시로 꼽히는 '번개 사업'을 3개월 만에 성공시켰다. 이후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와 한국표준연구소 1·2대 소장직을 맡으면서 산업 현장의 기틀을 닦았다. 이는 전부 한국 방위 산업의 전초기지로 발전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정 이사장은 사재 수십억 원을 내놓고 평생을 이공계 분야의 인재 양성에 헌신했다. 선친 송호(松湖) 정영덕 옹이 1985년 설립한 송호장학회를 1990년 물려받으면서 지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지원했던 장학금을 대학원생으로까지 확대했다. 선친의 아호를 본뜬 송호장학금은 고등학생에게, 자신의 아호에서 명명한 지학장학금은 화성 출신 이공계 인재들에게 지급하는 식이다. 대학원 석박사 과정 학생, 연구기관 소속 재원 등이 대상이다.
정 이사장은 "한국이 지금과 같은 정보기술(IT) 강국이 된 배경에는 이공계 학생들의 공이 컸다"며 "자기 분야에서 평생을 헌신할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국가 발전의 기본이 된다는 생각으로 후원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9년 송호장학회를 재단법인으로 확대하고, 2010년 지학장학금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선발 과정의 공정성은 그런 만큼 철저하게 따지고 있다.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기 전 정 이사장 스스로 '심층 면접'을 진행한다. 박사 학위를 받고 계속 연구하겠다는 각오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 성과는 직접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별도로 검증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렇게 박사 학위를 받은 인재 13명을 배출했다. 그중 3명은 현직 대학 교수로, 절반가량은 국책연구원 소속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최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산업 분야가 급부상하면서 장학생 선발에도 한국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분야에 가점을 두고 있다"며 "반도체와 배터리, 로봇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라고 부연했다.
정 이사장의 또 다른 관심사는 '홍난파 재조명'이다. 홍난파가 한국 음악사에 기여한 공로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홍난파생가기념사업추진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매년 무대에도 직접 선다. 그는 "올해도 다음달에 세종문화회관에서 '홍난파 음악회'를 연다"며 "홍난파의 고향이기도 한 화성에 그의 음악 활동을 기념할 수 있는 음악박물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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