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16일 발간한 '2025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서는 방어운전에 나서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글로벌 관세전쟁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 10명 중 7명(75%)은 올해 경기가 작년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투자 의향이 가장 높은 자산에 대한 질문(복수 응답)에서는 예금이 40%로 1순위에 꼽혔다. 이어 금(32%)과 채권(32%) 순이었다. 올해 기대수익률을 묻는 설문에는 절반가량이 연 5~10%를 택했다. 부동산 투자 의향(20%)은 조사 대상 12개 자산 가운데 8위에 머물렀다. 주식(29%)이나 펀드(24%)보다도 후순위로 밀렸다. 조사 이후 본격화된 미국 행정부의 관세전쟁 등을 고려하면 부자들의 보수적인 투자 성향은 더욱 강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 들어 이미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과 채권 투자에 불이 붙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올해 1~4월 금 7330억원어치를 쓸어담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의 금 순매수액이 180억원에 그친 데 비하면 40배 급증한 것이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60대 A씨는 최근 1억원을 들여 골드바를 매입했다. 그는 "경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데 주식, 부동산만 들고 있기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국채 몸값도 치솟고 있다. 올해 3~4월 개인투자용 국채 5년물 1300억원을 모집하는 데 2300억원이 몰렸다. 원금이 보장되면서 이자가 복리로 재투자되고, 분리과세 혜택을 받는다는 점이 부각됐다. 예·적금에도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금리가 더 떨어지기 전에 돈을 묻어두자는 흐름이 강해진 것이다.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지난 2월 말 기준 1755조원으로 1년 새 84조원 늘었다.
다만 이번 조사에 따르면 부유층에서도 세대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이상 부자들은 안전자산을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채워놓은 후 상장지수펀드(ETF)와 가상자산 등으로 목표 수익을 맞추겠다는 반면, 40대 이하 부자들은 활발하게 해외 주식과 코인을 담으며 공격적으로 수익률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특히 40대 이하인 '영리치'는 해외 주식과 코인에 적극 투자하겠다는 의향이 강했다. 주식을 들고 있다는 영리치는 10명 중 8명(78%)으로, 50대 이상 부자(66%)보다 많았다. 전체 주식 중 해외 주식 비중은 30%로, 마찬가지로 50대 이상(20%)보다 높았다.
전문직 종사자인 40대 B씨는 올 들어 비트코인으로 1억5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B씨는 "가상자산 변동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주력 코인은 투자 전망이 있다고 본다"며 "여윳돈 중 일부는 계속 넣어둘 생각"이라고 전했다. 올해 젊은 부자들은 해외 주식 비중을 40%까지 늘리겠다고 응답했다. 영리치의 평균 자산은 60억원으로, 이 중 절반(30억원)이 금융자산인 것으로 조사됐다.
가상자산을 갖고 있다는 40대 이하 젊은 부자(29%)는 50대 이상 부자(10%) 대비 3배에 달했다. 이들이 향후 자산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5년간 영리치가 연평균 6%씩 늘며 50대 이상 부자(3%)보다 2배 빨리 증가했기 때문이다.
황선경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영리치는 가상자산 등 투자 트렌드를 주도하면서 금융을 활용해 자산을 증식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부유층에서 금융자산을 1억원 이상 들고 있는 중상층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가상자산 투자의 인기가 두드러진다. 부유층과 중상층의 가상자산 보유 비중은 2022년 12%에서 2024년 18%까지 늘었다. 이들의 평균 투자액은 4200만원으로, 투자자 중 34%는 가상자산을 4종 이상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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