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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의무화 폐지에도…K배터리 ‘휴’?

트럼프, 예고대로 전기차 혜택 철회

  • 명순영
  • 기사입력:2025.01.31 14:40:42
  • 최종수정:2025.01.31 14: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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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예고대로 전기차 혜택 철회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제47대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 ‘그린 뉴딜(친환경 산업 정책)’을 종식하고, 전기차 의무화를 철회한다”며 “자동차 산업을 구하고, 위대한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오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량의 56%를 전기차로 판매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는데 이를 철회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내연기관차 판매를 제한하는 주정부의 배출 규제를 폐지할 계획이다.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정책을 신속하게 실현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다. 의회의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효력을 갖는다.

트럼프의 이 같은 정책 기조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예고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기차 의무화로 내연기관 차량 판매가 줄어들면, 지지 기반인 자동차 제조업 분야에서 2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해왔기 때문이다.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 기록이 유력하다. 엘앤에프를 비롯한 다수의 소재 기업도 4분기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배터리주가 바닥권에 왔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에코프로 제공)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 기록이 유력하다. 엘앤에프를 비롯한 다수의 소재 기업도 4분기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배터리주가 바닥권에 왔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에코프로 제공)

안 그래도 적자, 적자, 적자

환급제로 그간 버텨왔는데

배터리 업계는 트럼프의 전기차 의무화 철회로 고심이 깊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에서 2차전지 수요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배터리와 배터리 소재 기업은 줄줄이 영업손실을 냈다. 선두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 225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IRA에 따른 AMPC를 제외한 적자는 6028억원에 이른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배터리 3사’로 분류되는 삼성SDI와 SK온도 4분기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소재 기업 상황도 마찬가지다. 에코프로비엠의 경우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 기록이 유력하다. 엘앤에프를 비롯한 다수의 소재 기업도 4분기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안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이 한국 배터리 업계가 예상한 수위였기 때문이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는 완성차와 배터리를 대상으로 ▲구매자 대상 전기차 세액공제 ▲투자 세액공제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Advanced Manufacturing Production Credit) 등 크게 3가지 혜택을 부여한다.

전기차를 살 때 지급하는 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세액공제(구매보조금)는 행정부 세부 규칙을 통해 지급 조건을 강화하는 형태로 대상 차종을 줄일 가능성은 있다. 미국 정부가 배터리 공장에 지원하는 대출 프로그램도 행정부 차원에서 지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배터리 업계 관심은 AMPC다. AMPC는 자국 내 생산설비 투자 기업에 대해 배터리셀은 킬로와트시(㎾h)당 35달러, 모듈은 ㎾h당 10달러를 기업에 환급하는 제도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AMPC를 통해 분기마다 최대 수천억원의 혜택을 받았다. 미국 생산 거점을 가장 많이 차린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조4800억원을 AMPC로 수령하며 실적을 유지했다. 실적 부진에 빠진 한국 배터리 업체에 유일한 버팀목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AMPC 보조금을 계속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조세 정책을 바꾸려면 행정부의 명령이 아니라 의회를 통해 법안을 바꿔야 한다.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이긴 하지만, IRA로 타국 업체들이 공장을 지은 미시간, 오하이오 등의 공화당 의원들이 현지 고용 악영향을 우려해 IRA 폐기에 반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IRA를 즉각적으로 폐기하기보다 중국 등 해외우려기업(FEOC) 규제를 강화하는 방법 등으로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IRA 폐지·변경은 행정명령으로 불가능하며 상·하원의 합의와 찬반 투표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아직 IRA 폐지가 완전히 이뤄진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설명

악재 다 나왔다…바닥론 솔솔

대표 부정론자도 “우려 지나쳐”

증권가에서는 주가가 충분히 떨어진 만큼 ‘바닥권’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여의도에서 대표적인 배터리 매도론자로 꼽혔던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시각을 바꿨다. 그는 “우려가 지나치다”며 에코프로비엠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바꿨다. 또한 올해 2분기부터 에코프로비엠이 흑자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전기 충전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확대 ▲전기차·배터리 업체들의 대규모 투자 ▲중국과 테슬라의 전기차 전환 속도 등을 근거로 들어 2차전지 업계 성장세가 살아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한병화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낮추는 등의 정책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성장 속도를 부분적으로 완화하는 정도지 구조적인 성장 구도를 깨지는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반전기차 정책, EU의 탄소배출 규제 완화 등 전기차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나치게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글로벌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지속적으로 확대돼왔고, 전기차·배터리 업체들의 대규모 투자는 되돌리기 힘든 수준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업계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산업부와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배터리·배터리 소재 기업들은 최근 ‘2차전지 비상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번 TF에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기업과 에코프로, LG화학,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등 배터리 소재 기업이 참여했다.

배터리 업계는 현지 생산시설 투자는 계획대로 이행하는 중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단행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약 7조2000억원을 투자해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GM과 합작법인으로 추진한 얼티엄셀즈 3공장을 인수해 단독 공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온은 올해 포드와의 합작사 블루오벌SK의 켄터키1공장과 테네시 공장, 조지아주의 현대차 합작 공장 등 3곳의 가동을 시작한다. 삼성SDI 역시 미국 스텔란티스와의 합작사(JV)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의 생산공장 4개 라인 중 1개 라인을 지난해 말 조기 가동한 데 이어, 올해 1분기부터 나머지 3개 라인을 차례로 가동할 예정이다. 아울러 배터리 제조사들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흑연·리튬 등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5호 (2025.02.05~2025.02.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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