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지휘 베토벤 합창교향곡으로
‘환희의 송가’ 등 웅장한 개관 축제
조성진·선우예권 축하공연 전석매진
시민들 “드디어 부산에도” 기대감
베일벗은 음향 엇갈린 관객 평가 속
전문가 “객석별 편차 적고 울림 적당”

“부산에서도 이런 공연을 볼 수 있게 됐네요.”
중학교 1학년생 아들과 함께 온 박효주 씨(43)는 공연 시작 전 부산콘서트홀 입구에 전시된 건축물 모형부터 세세히 내부를 둘러봤다. 그는 “부산에 전문 공연장이 없다 보니 클래식 공연을 접할 기회가 적었다”며 “이제 아이에게도 자주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부산 서면에 거주한다는 클래식 애호가 이나겸 씨(50)는 “유명 연주자 실황을 보러 서울, 통영 등을 오가느라 표 값에 교통, 숙소, 식비까지 지출이 만만찮았다”며 “앞으로 부산콘서트홀이 지역 정통성을 가진 부산시립교향악단과도 협력해 좋은 공연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산진구 연지동 부산시민공원 내에 자리한 시 최초의 전문 클래식 공연장이 20일 마침내 문을 열자 남녀노소 지역민들의 들뜬 발길이 이어졌다. 부산콘서트홀은 물결치는 커튼콜 모양을 형상화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공연장으로, 2011석 대공연장과 400석 소공연장을 갖췄다. 특히 대공연장에는 비수도권 전문 공연장 중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시·청각적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빈야드(포도밭) 형태의 객석, 0.6m(계단 3칸)에 불과한 무대 높이로 관객과 연주자의 거리도 가깝게 구현했다.

처음 손님을 맞은 이날의 객석은 합창석을 제외하고 추첨에 뽑힌 부산 시민과 전석 초청된 시 관계자 등 1600명으로 꽉 찼다. 첫 연주는 ‘하나를 위한 노래’라는 부제하에 정명훈 부산콘서트홀 예술감독의 지휘로 시작됐다. 1부는 정명훈이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병행하고 중국 첼리스트 지안 왕,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사야카 쇼지가 협연한 베토벤 삼중 협주곡. 지안 왕의 섬세하고 안정적인 연주가 곡을 주도했고, 사야카 쇼지의 화려한 음색과 모두를 감싸는 듯한 정명훈의 피아노 연주가 어우러졌다.
28일까지 이어지는 개관 페스티벌 연주를 맡은 APO는 정명훈의 “아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부산에서 선보이겠다” “부산이 음악과 함께하는 글로벌 허브 도시가 되길 바란다”는 포부를 담아 결성됐다. 단원 대부분 한·중·일 출신으로, 국내외 20여 개 악단의 전·현직 단원 100여 명이 모였다. 악장은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의 동양인·여성 최초 악장이기도 한 박지윤이 맡았다. 파리국립오페라단 클라리넷 수석 김한, 베를린필 비올라 단원 박경민 등 세계적 악단에서 활약하는 한국 연주자들도 고국 무대를 찾았다.
2부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에서도 소프라노 황수미, 바리톤 김기훈 등 우리나라 성악가들 활약이 돋보였다. APO와 합창단이 프로젝트성으로 구성된 탓인지 합주에 다소 한계는 느껴졌지만, 4악장 ‘환희의 송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함은 개관 축제의 서곡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빠르게 내달리며 화려하게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선 약 5분 동안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이날 공연 중 스마트폰 촬영, 악장 사이 박수 등 어수선한 분위기는 옥의 티였다. 클래식부산 측은 “첫날 초청 공연이다 보니 관객 매너에 대한 안내가 다소 부족했다. 보완해나가겠다”고 전했다.


개관 전부터 기대를 모은 음향 평가는 대체로 준수하다는 쪽이었다. 부산콘서트홀에 따르면, 대공연장은 이형벽돌과 마샬반사판, 음향 확산체 등으로 음향 성능을 끌어올렸다. 실측 결과 잔향 시간은 객석이 비었을 때 약 2.3초로 공간 울림이 풍부한 편이다. 그 외 저음비, 명료도, 음의 세기 등의 수치도 세계적 콘서트홀 수준을 만족시켰다고 한다. 다만 객석이 꽉 찼을 때 체감 잔향은 기대에 못미친다는 혹평도 일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세계적 톤마이스터 최진 음악감독은 “객석 위치별 편차가 적고 울림도 과하지 않게 적당한 편”이라며 “오픈 초기인 점을 고려하면 부족한 부분은 개선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부산콘서트홀이 선보일 개관 기획 공연은 일찍부터 반응이 뜨겁다. 22일 세계적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3일 선우예권과 APO 앙상블의 ‘베토벤과 낭만’ 등이 매진됐다. 27~28일엔 정명훈이 지휘하는 베토벤 오페라 ‘피델리오’ 콘서트 버전으로 개관 페스티벌의 막을 내린다. 이어 다음 달 손민수 피아노 리사이틀, 노부스 콰르텟 베토벤 전곡 연주 등이 예정됐다.

한편 20일 개관식엔 박형준 부산시장,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비롯한 국내외 주요 예술기관장이 참석했다. 정명훈이 2027년부터 예술감독으로 취임하는 세계적 극장 이탈리아 라 스칼라의 포르투나토 오르톰비나 극장장(65)도 내한했다. 그는 21일 국내 취재진과 만나 “아주 아름다운 보석이 탄생했다”며 “시민들이 부산콘서트홀을 시민 모두의 것이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 목표에 온 도시가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산 정주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