먀오웨이 지음, 강정규 외 옮김, 글항아리 펴냄

“코너를 돌며 추월한다.”
중국 최대 포털 기업 바이두 창업자인 리옌훙이 2009년에 밝힌 비전이다. 자동차 경주에서 커브를 돌 때 순위가 확 바뀌듯 경제 위기나 기술 전환기에 기회를 잡으면 초월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만도초차(彎道超車)’ 전략은 중국의 경제와 산업 발전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였다.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전략이 바로 ‘환도초차(換道超車)’ 또는 ‘환도새차(換道賽車)’ 전략이다. 직선 차선에서 경쟁자를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 한다는 뜻으로, 말 그대로 ‘게임 규칙’을 바꾸는 과감한 전략이다. 중국이 전기차 강국으로 도약한 핵심 전략이 바로 이 ‘차선 변경’ 전략이다.
신간 ‘중국 전기차가 온다’(원제: 換道賽車)는 10년간 신에너지차(전기차) 개발과 ‘중국 제조 2025’를 이끈 먀오웨이 전 공업정보화부 장관이 집필한 책으로 자전거 왕국이었던 중국이 어떻게 전기차 강국으로 도약했는지 비결을 담고 있다. 결과적으로 내연기관차 기술력 축적과 시장 확대라는 단계를 생략하고 과감하게 전기차로 차선을 바꾼 전략적 선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책은 2009년 10월 20일, 중국이 처음으로 연간 1000만번째 자동차를 생산한 날에서 시작한다.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세계 자동차 생산·판매 1위 대국이 됐다고 해서 강국은 아니다. 자동차 강국의 상징은 무엇인가.” 그는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 강국이 되려면 세 가지가 있어야 한다. 글로벌 대기업과 세계를 선도하는 핵심 기술, 대량 수출이다.”
16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자동차 대국에서 명실상부한 자동차 강국으로 약진했다. 세계 1위 전기차 제조업체 중국 비야디(BYD)는 작년 427만대를 판매하며 미국 테슬라 매출을 앞지른 데 이어 올해 누적 판매량에서 현대자동차를 앞서고 있다. 지난달엔 차종 22개를 대상으로 최대 34% 공격적인 할인에 방아쇠를 당기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 치킨 게임을 주도하고 있다.
‘블레이드 배터리’와 ‘셀투바디(CTB)’ 기술은 비야디의 핵심 경쟁력이다. 배터리 셀을 차체에 바로 통합하는 이 기술은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고, 제조 공정을 간소화하는 혁신적 기술이다. 비야디는 4만2000건이 넘는 특허를 보유하며 ‘기술은 왕, 혁신은 근본’이라는 기업 철학 아래 끊임없이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80%에 이른다.
중국 전기차 혁명의 시작은 편지 한 통이었다. 1992년 국보급 원로 과학자 첸쉐썬은 1992년 당시 국무원 부총리였던 저우자화에게 “중국은 가솔린, 디젤 단계는 건너뛰고, 환경오염을 줄이는 신에너지 단계에 곧장 진입해야 한다”고 편지를 보냈다. 미국·일본과 기술 격차가 큰 내연기관에 집착하는 대신, ‘전기차’라는 새로운 차선에 집중하는 전략을 제안한 것이다. 때마침 자동차 산업은 차량 구동 시스템과 제어 방식에서 100년만의 대변혁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중국은 8·9차 5개년 계획에 신에너지차 연구개발을 포함하고, 2001년 시작된 10차 5개년 계획에서는 ‘863 계획’에 신에너지차를 적극 편입하며 대규모 자금과 정책 지원을 펼쳤다. 863 계획은 첨단산업과 핵심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과 정책 지원을 집중 투입하는 정책이다. 덩샤오핑이 과학자 4명의 합동 보고서를 읽은 뒤 1986년 3월 지시를 내렸다고 해 ‘863’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과 일본은 순수 전기차로 전환하기 전 하이브리드라는 중간 단계에 집중했지만, 중국은 전기차처럼 외부에서 배터리를 충전하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만 신에너지차로 규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신에너지차의 시험 무대이자 상용화 전초전이 되었고, 이후 전국적으로 보조금 지급과 ‘10개 도시 1000대의 차량’ 시범사업이 확대됐다. 전기차가 먼저냐 충전소가 먼저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길이 차를 기다릴지언정 차가 길을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 마치 군마가 움직이기 전에 식량과 말꼴을 먼저 준비한다는 말처럼 정부가 먼저 충전소, 스마트 도로 등 전기차 인프라를 구축한 뒤 기업과 시장이 그 기반 위에서 전기차 사업을 수행하게 했다. 이것이 20~30년 만에 중국이 세계 정상에 설 수 있었던 성공의 열쇠였다.
물론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보조금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배터리 폭발 사고로 안전 우려가 불거졌다. 최근엔 공급과잉 우려가 제살깎기 할인 경쟁을 부추기며 수익성에 빨간불을 켰다.
저자는 미래 자동차 경주에서 전기화가 전반전이라면 후반전은 스마트화라고 지적한다. 아직 글로벌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차는 컴퓨터나 로봇처럼 통합제어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율주행, 스마트 커넥티드카, 플라잉카 등을 둘러싼 업종 간 융합도 빨라지고 있다. 초경쟁이 펼쳐지는 전쟁터에서 기존 방식을 고수하거나 늦게 대응하는 것은 곧 도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동차 패권의 후반전에서 한국 자동차의 기술 역전이 가능할까. 민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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