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K3에서 개최 중인 그룹전 'Next Painting: As We Are'는 현실과 반(反)현실의 관계를 치밀하게 사유하는 전시다. 이성휘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번 그룹전에는 6인의 젊은 작가들, 그의 전언에 따르면 '회화 이후의 회화'를 모색하는 1980~1990년대생 작가들의 신작이 소개됐다. 최근 언론 간담회에서 6인의 그룹전을 천천히 살펴봤다.
먼저 유신애 작가의 캔버스 3점이 눈에 띈다. K1 한쪽 벽면에 나란히 선 작품들로, 왼쪽부터 'A Large Organization of Humans Will Always Find a Way to Suck' 'Innovation in Exploitation' 'Fishing Fantasy'가 걸려 있다. 이들 작품은 천둥과 먹구름, 푸른 들판, 거대한 광야를 배경으로 수직으로 우뚝한 기계가 중앙에 배치돼 있다. 일견 파친코 기계를 연상시키는데, 자세히 보면 여성들의 왜곡된 신체가 배치돼 있다.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파친코 기계는 자본주의 사회 속 생존에의 갈망을 가장 기계적으로 은유한다. 흔해 보이는 파친코 기계와의 확률(운) 대결에서 승리해야만 저 드넓은 자연 속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역설이 작품에 서린 듯하다. 이 큐레이터는 "자본에 대한 속물적인 갈망과 구원은 곧 판타지라는 메시지가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고전회화의 양식을 차용한 점이 유신애 작가 세 작품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새 작가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보다 더 자전적이다. 'Bruised Eyes'는 이은새 작가 본인의 멍든 눈이 변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초기의 검붉은 멍은 점차 푸른색으로 변화되는데, 작가는 자신의 신체를 들여다보면서 두 장면을 상하로 대비시켰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호소하는 대신,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그저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 독특하다. 인간은 고통에 취약하지만 아픔을 객관화하는 시선 그 자체를 가만히 쳐다보게 만든다.
정이지 작가는 풍경, 사물, 인물을 먼저 스냅샷으로 찍은 뒤, 이를 다시 캔버스로 옮기는 작법을 추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폭 4.6m짜리 'It's Tomorrow'가 눈에 띄는데, 동해의 거대한 일출을 찍은 뒤 일출의 환희를 담아냈다. 하지만 이 같은 초대형 작품 이면에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는데 바로 'Secco 1~3'이다. 한 여성의 눈을 클로즈업한 뒤 이를 세로 방향으로 나열한 작품들인데, 똑같은 구조임에도 빛의 조도나 붓의 굵기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동일한 구성의 작품들이 하나의 벽면에 나란하기에 보는 사람은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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