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법주사는 80kg의 황금이 들어간 미륵대불이 유명하다. 절 초입에 자리한 숲이 좋은데, ‘오리숲’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오리(五里)숲은 숲의 길이가 ‘5리’에 이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매표소에서 법주사까지 약 2km 정도 이어지는 이 길에는 수령 100~200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와 떡갈나무, 참나무가 자란다.
예로부터 속리산은 속세와 단절이 가능한 명산으로 꼽혀왔는데, 출가자들은 그 초입인 오리숲을 ‘속리’(俗離) 즉 세상과의 이별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삼았다. 길은 발소리마저 빨아들일 듯 푹신하고 숲을 빠져나온 휘황한 봄 햇살이 발등에 내려앉는다. 이렇게 걸으며 잡다한 생각을 잠시나마 지운다.

선암사 매표소에서 절을 향할 때 이팝나무, 서어나무, 굴참나무, 조팝나무, 산딸나무, 느티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승선교는 ‘선녀들이 승천한다’는 뜻을 가졌는데, 아치형의 다리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답다. 그 뒤 아담한 절이 나타난다. 빛바랜 기왓장, 모서리가 닳아 둥그스름해진 돌계단, 바람이 불어 풍경이라도 울리면 마음 한구석이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대웅전은 절 규모에 비해 그리 크지 않지만 단아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보림사 뒤편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비자나무 5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룬 숲이 있고, 그 사이로 다소곳한 산책로가 있다. 숲 곳곳에 의자와 산림욕대도 마련됐다. 산책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아 누구나 걷기 쉽고,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하다.
비자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 사이사이에 야생차밭이 보인다. 그래서 이 길을 ‘청태전 티로드’라고 부른다. 청태전(靑苔錢)은 ‘푸른 이끼가 낀 동전 모양 차’라는 뜻으로, 맛이 순하고 부드러운 발효차다. 야생 찻잎을 따서 가마솥에 덖고 절구에 빻은 뒤 엽전 모양으로 빚어 발효한다. 장흥다원이나 평화다원에 가면 청태전을 직접 만들고 맛볼 수 있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76호(25.04.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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