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러한 투자 방향이 국내 내수시장과 일자리 창출, 소상공인 매출 확대와도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을까. 현재로선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이 충분히 제시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AI 산업의 중심에 있는 미국도 최근 고용 구조는 녹록지 않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체 인력의 약 3%(6000명)를 줄였고, 인텔은 20%(2만2000명), 메타도 3600여 명을 감원했다. AI를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기에는 아직 조심스러운 이유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은행이 주최한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흥미로운 관점이 제시됐다. 국제결제은행(BIS)의 레오나르도 감바코르타 부서장은 "AI 기술 확산은 자본재 산업보다 소비재 산업에서 더 큰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며, 장단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35%와 소비 증가를 견인한다"고 강조했다. 선박, 차량, 기계 등 자본재 산업보다 AI가 소비재 유통과 밀접한 산업에서 더욱 큰 경제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소비재 유통업은 AI 기술의 영향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야다. AI는 상품 추천, 물류 경로 최적화, 고객 맞춤 서비스에 활용되며 그로 인해 다양한 직업군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고,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온라인 유통 산업에서는 AI→물류 혁신→배송 효율화→소비 확대→중소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쿠팡이다. 10년 동안 AI 기술과 물류 인프라스트럭처에 6조원 이상을 투자한 쿠팡은 전국에 100개 이상 물류센터를 운영하며 약 8만개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배송 권역이 제주 등 도서 산간 지역으로까지 확대되며 해당 지역에서도 수만 명의 위탁 배송기사 일자리가 창출됐다.
아울러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도 AI 기술을 접목한 추천 서비스와 전국 배송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의 온·오프라인 통합 서비스를 제약하는 유통산업발전법 등 일부 규제가 여전히 성장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만약 의무휴업 제도가 완화되고 점포 기반의 온라인 새벽배송이 전면 허용된다면, 기업들의 AI 투자가 더욱 활발해지고 이는 곧 더 많은 고용 창출과 중소상인들의 매출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배달의민족' 등 배달 앱도 마찬가지다. AI 기반의 추천 알고리즘으로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라이더의 생계를 함께 지탱하고 있다. 배달 앱을 단지 '수수료 규제'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소비 진작에 기여하는 디지털 기반 생활 인프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AI 산업 육성 정책은 방향성이 뚜렷하고 미래 지향적이다. 그러나 그 목표가 국민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한 것이라면 첨단 기술에 대한 규제 완화뿐만 아니라 AI 기반 소비재·유통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제도 개선도 함께 논의돼야 할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