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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소금 정부가 되라

소금은 생명을 살린다
과하면 독이 되기도 한다
땀과 눈물은 왜 짠지
어떻게 하면 썩지 않을지
'세 귀'를 열고 들어라

  • 기사입력:2025.06.15 17:27:20
  • 최종수정:2025.06.15 17: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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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밭은 눈부시다. 전남 신안군 증도의 드넓은 염전 앞에 섰다. 좋은 햇볕과 바람이 생명의 물질을 만들어내는 곳. 그 하얀 결정에는 누군가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미국은 강제노동을 이유로 이곳 소금의 수입을 막았다. 우리 농어촌 노동의 어둡고 아픈 곳을 더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가는 길에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축하' 현수막이 숱하게 내걸렸다. 뭔가 달라지리라는 바람을 담았을 것이다. 혹은 처음 한 약속 그대로 변치 말라는 요구를 담았을지도.

소금밭에서 헤아려본다. 사람들은 새 정부에 뭘 바랄까. 나는 이재명 정부가 소금의 장인이 되기를 바란다. 소금을 맛깔나게 치는 요리사나 소금의 과부족을 잘 짚어내는 의사여도 좋겠다.

태초부터 생명에는 적당한 소금기가 필요했다. 소금이 부족할 때 우리 몸은 탈이 난다. 맥이 빠지고 우울해진다. 신경과 근육은 생체 전류를 만드는 소금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지나치게 많이 먹은 소금은 독이 된다. 혈압이 높아지고 순환계가 망가진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호숫가 대학의 민물학파와 바닷가 대학의 짠물학파가 대립했다. 전자는 스스로 잘 돌아가는 시장에 정부가 간섭하면 오히려 경제를 망칠 수 있다고 했다. 후자는 시장이 해결 못하는 문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이 정부는 짠물학파에 가깝다. 중요한 건 알맞게 간간한 정책을 펴는 것이다.

단기적 수요 관리에 매달리며 근본적 개혁을 미룬다면 제대로 간을 맞춘 정책이 아니다. 실용과 성장은 만병통치의 수사가 아니다. 그걸로 정치적 난제를 다 얼버무릴 수 없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지방에는 빈집과 문 닫은 가게가 즐비하다. 서울 강남의 집값은 활활 타오른다. 어떤 실용과 성장으로 이런 문제를 풀 것인가.

나는 공감할 줄 아는 정부를 바란다. 땀과 눈물의 소금기를 알아볼 수 있는 정부다. 그러자면 먼저 정부가 땀을 쏟아야 한다. 로마 병사는 분투의 대가로 귀한 소금을 배급받았다. '샐러리(급여)'라는 말이 그로부터 유래했다는 이야기는 과장됐지만 함축적이다. 정부는 스스로 소금값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도 땀 흘릴 것을 호소할 수 있다. 선거 때 했던 숱한 약속은 땀 없이 실행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값싼 외국인 노동자와 인공지능 로봇이 그 모든 땀을 대신할 수는 없다.

소금은 생명을 지키는 데 필수적이다. 그만큼 독점의 이익도 컸다. 전제 권력만이 그것을 독점할 수 있었다. 중국은 2017년에야 국가의 소금 독점을 끝내겠다고 했다. 2000년간 이어진 황제의 수탈은 혁신의 싹을 없애버렸다. 프랑스의 염세는 혁명의 불씨가 됐다. 인도에서 소금 밀매자를 처벌하던 영국은 거대한 저항에 부딪혔다. 조선총독부의 소금 전매령도 압제의 수단이었다. 소금 독점은 착취적 제도를 상징했다. 포용적 성장의 요체는 모두에게 필요한 기본재와 창조적 파괴의 기회를 소수 지배층이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소금은 가치 있는 것을 보존해준다. 소금에 절인 생선이나 치즈로 만든 우유는 오래간다. 수분을 빼앗아 박테리아를 죽이는 소금은 시간을 벌어준다. 그 원리를 잊어버리는 정부는 스스로 부패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정부가 소금 정부가 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이 대통령은 소금만 먹으며 단식한 적이 있다. 짜디짠 그 물질이 사람을 살린다는 걸 체득했을 것이다. 이 정부가 5년 내내 그 이치를 곱씹어보기를 바란다. 사람의 땀과 눈물은 왜 짠지, 어떻게 하면 스스로 썩지 않을지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세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장경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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