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경제 현실은 여전히 겨울처럼 냉랭하다. 국내외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고, 기업 현장은 불확실성과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수많은 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고, 현장에는 절박함과 피로감이 가득하다.
얼마 전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며, 지난 50년간 한국 근대화의 궤적을 되짚어 보게 됐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기업가'가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모험을 선택했고, 그 도전은 결국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한국 경제를 세계 무대 위로 올려놓았다.
"해봤어?" 생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가장 자주 했던 한마디다. 그는 전후 폐허 속에서 자본도, 기술도 없이 불도저 한 대로 중동 건설 신화를 만들어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한국의 중동 진출을 현실로 만든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된다. 정주영 회장이 보여준 도전정신은 단지 한 기업인의 일화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자 기업가정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폰 하나로 산업 구조와 소비자 행태 자체를 바꿨다.
국내에서도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를 창업한 이승건 대표는 치대를 졸업하고 창업에 뛰어들어 복잡하고 불편했던 금융 시스템을 혁신하고 있다. 그는 300번이 넘는 투자 유치 실패를 딛고, 집요한 개선과 사용자 중심 설계를 통해 누적 이용자 수 2000만명이 넘는 국내 대표 핀테크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모두 기존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낸 창조적 기업가들이다. 이처럼 기업가는 단순한 수익 창출자가 아니다. 그들은 문제를 기회로 바꾸고, 새로운 질서와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실행자이자 설계자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더 많은 도전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도전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정책 결정자의 인식 전환이 우선이다. 정부는 기업을 유도하고 통제하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시장 기능을 조율하고 생태계를 설계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돼야 한다. 기업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실패한 기업인에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을 갖추는 일이 국가의 책무다. 유교적 계급체계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문화에 매몰돼 정치와 권력이 삼권(三權)을 독점하며 기득권 유지나 권력 향유에 집중한다면 기업가정신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
기업가정신은 단지 경제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셜벤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임팩트 스타트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 활동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수익성과 공익성의 균형을 고민하며, 시장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인구구조 변화, 지방 소멸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 앞에서 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정부는 혁신의 리듬을 방해하지 않고, 각 주체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조력자가 돼야 한다.
결국 진정한 혁신은 안정과 관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우리가 가진 자원과 역량을 창의적으로 재조합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기업가다.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한번 기업가정신으로 도약할 시점에 서 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 모두가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시간이다.
[최정일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경영학회 차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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