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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황님, 큰 짐 내려놓고 안식하시길

가난하고 소탈한 삶 실천
늘 유쾌했던 멋진 리더
천국서 편안하시길 기도

  • 기사입력:2025.04.22 17:30:12
  • 최종수정:2025-04-22 19: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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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는 소식에 세계의 많은 이들이 슬픔에 빠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상으로 복귀하셨다는 소식에 안도했는데 참어른의 존재가 필요한 요즘 세상에 더욱더 그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다.

선대 교황 265명이 쓰지 않았던 '프란치스코'란 이름을 교황명으로 정할 때부터 그분의 행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교황청 궁 안에 있는 숙소 대신 성베드로대성전 근처 성마르타의 집에서 지내셨다는 것이다. 마르타의 집은 교황청 근무자나 교황청에 업무상 방문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숙박시설이다. 그는 처음으로 추기경들과 함께 이동할 때 전용차 대신 추기경들이 있는 버스를 타서 일행과 스스럼없이 대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디에서나 가난하고 소탈한 삶을 몸소 실천했다. 특히 강론할 때 아주 쉽고 평이한 말이나 비유로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감동을 주었다. "사제는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표현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내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가까이 만난 것은 2014년 8월 18일 한국 순방의 마지막 행사인 명동성당 미사에서였다. 제의방에서 미사 전후로 만난 당시 78세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피곤하고 지쳤는데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이들 누구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실 한여름 푹푹 찌는 한국의 더위 속에서 4박5일의 빡빡한 일정은 숨 막힐 정도였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소중한 느낌이 들게 해주는 것은 평소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탈한 미소와 분위기를 밝게 하시려는 그분의 노력에서 인간적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에게 평소에도 항상 같은 모습이시냐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교황님은 소탈하고 따뜻한 분이에요. 곁에 가까이 있다 보면 결점도 보일 만한데 교황님은 가식이 없고 친근한 매력이 많이 있는 분이에요." 여러 명의 교황을 보좌한 롬바르디 신부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분이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누구보다 빨리 애도 메시지를 발표하시고 유가족을 위로하셨다. 2014년 4박5일의 일정은 사실 계획된 것이 아니라 갑자기 정해져 교황의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온 것이었다. 재작년 바티칸 광장에서 사용한 일본의 전광판 대신 삼성전자 최신 초대형 옥외 전광판 4개를 설치했을 때 유흥식 추기경을 통해 이재용 삼성 회장을 바티칸에 초청해 감사를 표시하셨다. 그리고 수백 년이나 비어 있던 바티칸 대성당 외벽에 성인 김대건 신부님 성상이 설치됐다. 그 후에 사석에서 유흥식 추기경에게 교황님은 "한국이 조금씩 조금씩 교황청 안쪽으로 들어오네요"라며 함께 웃으셨다고 한다.

리더는 유쾌함과 유머를 늘 지녀야 한다는 어떤 신부님의 말씀대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교황을 하늘에서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지고 계셨던 큰 짐을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안식하시기를 기도한다. 교황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늘 하던 대로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가세요"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또 만나요"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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