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잘나가는 주식 중개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떠났다. 그러고는 친구의 와이프와 잤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친구의 아내였다. 은혜로운 친구에게 날린 ‘빅엿’. 자기 잘못이라 생각지 않았다. 먼저 매달린 건 ‘그녀’였으니까.
늘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던 그녀의 살갗이, 어느 순간 한낱 고깃덩어리로 보인다(?). 그는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제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삶을 포기한 것 역시 그녀의 선택이었으니까. 그는 ‘타히티섬’에 가서 원주민 소녀들과 관계를 맺고(?) 다시 한번 예술혼을 불사른다.
물음표 가득한 줄거리를 가진 이 소설 제목은 ‘달과 6펜스’다. 현실과 도덕을 내버리고 예술과 쾌락에 몸을 던지는 주식 중개인 찰스 스트릭랜드의 얘기를 다룬다. ‘달’은 그가 쫓는 예술의 이상을, ‘6펜스(영국 화폐 단위)’는 돈이 상징하는 현실과 도덕 체계를 의미한다.
저자는 영국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 그는 달과 6펜스로 대문호가 됐다. 명성만큼 화려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다. 내면에는 언제나 근심과 걱정이 자리했다. 그는 말더듬이였고 동성애자였다. 여성과 결혼하고 자녀까지 있었지만,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한 미국인 남자를 끝내 잊지 못했다.

파리에서 태어나 추방당한 영국인
고아 출신 말더듬이…‘글’의 세계로
달과 6펜스는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모델은 인상파 화가 폴 고갱. 고갱 역시 파리의 주식 중개인으로 살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 아내와 다섯 아이를 버렸다. 타히티섬에서는 10대 원주민 소녀들과 관계를 갖고 애도 낳았다.
서머싯 몸은 고갱이나 찰스 스트릭랜드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달’을 욕망하면서도, ‘6펜스(현실·도덕)’를 버리지 못해 서성였다. 예술과 쾌락에 완전히 젖어들기엔, 그의 사회적 계급이 너무 높아서다. 몸은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나고 자랐다. 영국인인 그가 파리에서 태어났다는 건 가문의 높은 지체를 상징한다. 아버지는 프랑스 파리에서 성공한 영국인 변호사였다.
몸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셔벗과 같은 것이어서 쉽게 녹거나, 양이 작았다. 8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죽고,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버렸다. 이제 막 열 살에 고아가 된 셈. 영국에 있는 삼촌에게 맡겨졌다. 파리에서의 추방령이었다.
영국은 그의 조국이었지만, 고향은 아니었다. 영국은 격식, 엄숙, 박절한 표정으로 몸을 맞았다. 잉글랜드의 아이들은 몸의 불어식 영어를 트집 잡았고, 파리지앵스러운 태도를 골려댔다. 10대 초반 몸의 생채기는 깊고 진했다. 놀림감이 된다는 두려움에 몸은 말더듬증을 앓았고 이는 그의 삶을 평생 따라다녔다.
말로 먹고사는 변호사 집안 아들에게 ‘말더듬증’은 저주와 같았다. 몸이 ‘말의 세계’를 벗어나 ‘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자연스러웠다. 말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머리가 좋은 집안 내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몸은 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글감을 모으기에 의사는 좋은 직업이었다. 특히 그는 가난한 노동자를 주로 진료했는데, 상류층으로서 목도할 수 없는 삶의 거친 면을 간접적으로라도 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첫 소설 ‘램버스의 리자’는 이때의 ‘진료(취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동성을 사랑했지만 현실·도덕과 타협한 ‘몸’
평생 ‘달(이상)’ 쫓았지만 현실은 ‘6펜스’에
작가로서 성공한 삶이었지만, 근심은 심해만큼 깊었다. 남자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 도덕주의가 지배하던 곳. 남자를 좋아한 남자는 법의 처벌을 받았다. 윌리엄 서머싯 몸이 누구인가. 지체 높은 귀족 집안, 성공한 작가가 아니던가. 그의 성적 기호는 감추어져야 하는 것이었고, 옷장 안에서 꺼내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가 시리라는 이름의 실내장식 디자이너와 결혼한 이유다.
그의 진짜 사랑은 미국인 프레데릭 제럴드 핵스턴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남자였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몸은 핵스턴을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결혼하고 딸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몸은 핵스턴을 잊지 못했다. 가려져야 해서, 그래서 더욱 가련한 사랑이었다.
정보당국은 외국어에 능한 몸을 고용해 남태평양으로 보냈다. 독일과 미국이 모두 탐내는, 영국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운명은 그를 다시 예기치 못한 곳으로 이끌었는데, 이곳에서 그는 핵스턴과 재회했다. 핵스턴은 귀족과도 거지와도 친구가 될 정도로 넉살이 좋았다. 정보를 캐는 데 귀재라는 의미. 몸은 핵스턴을 두고 “나와 외부 세계의 중개자”라고 말했다.
사랑과 일을 모두 쟁취한 만족스러운 나날. 두 사람이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에 갔을 때다. 몸은 그곳에서 스러진 위대한 예술가의 흔적을 발견했다. ‘폴 고갱’이다. 주식 중개인으로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리고도 “예술을 하겠다”며 모든 걸 버린 남자. 타히티의 10대 소녀들과 동거하면서 쾌락을 물감삼아 붓칠을 한 화가. 몸이 고갱을 소재로 소설 ‘달과 6펜스’를 쓰기로 한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몸은 ‘6펜스’로 상징되는 현실, 체면, 도덕의 중력에 메어 결코 달로 향하지 못했으니까.
달과 6펜스는 화자인 ‘나’가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를 관찰하는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몸’이 ‘폴 고갱’을 바라보는 관점으로도 읽힌다. ‘나’는 스트릭랜드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스트릭랜드(고갱)’를 마냥 비난하기에는 그의 예술은 너무 위대했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찬양하기에는 성적 방종은 너무나 너저분한 것이었기 때문. ‘나’는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한다. 서머싯 몸의 내적 갈등의 결과물이 달과 6펜스였다. 핵스턴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몸은 6펜스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어서, 그와의 관계를 비밀에 부쳤다.
지금도 유효한 서머싯 몸의 질문
달이냐 6펜스냐, 본능이냐 현실이냐
프랑스 남부 카프 페라는 몸의 안식처였다. 소설을 쓰는 펜, 그리고 핵스턴과 함께여서다.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10년 동안 그는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작품을 써나갔지만, 다시 그의 삶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 벌어졌다. 나치의 프랑스 침공. 2차 세계대전이다.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다. 종전을 앞두고 핵스턴이 결핵으로 사망했다. 몸을 작가로 있게 해준 ‘달’의 죽음. “내 인생 최고의 나날은 모두 그와 세계를 방랑하며 보낸 시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내가 쓴 모든 것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가 관여돼 있다.” 모르는 이들은 우정 어린 추도문으로 읽었고, 가까운 이들은 연인을 향한 애끓는 그리움을 포착했다.
1965년 12월, 윌리엄 서머싯 몸도 핵스턴 곁으로 갔다. 영국은 몸의 유해를 캔터베리 대성당으로 데려왔다. 영국 문학의 아버지인 제프리 초서가 쓴 ‘캔버베리 이야기’의 배경인 곳, 그래서 모든 이야기꾼이 잠들고 싶어 하는 곳이다.
이야기의 성지에 묻힌 몸의 질문은 유효하다. 달과 6펜스 사이, 인간이 마땅히 서야 할 곳은 어디인가. 예술의 황홀함인가, 도덕의 숭고함인가. 괘종시계 추처럼 인간은 여전히 달과 6펜스 사이에서 방황하며, 유랑하고, 짙은 안갯속을 헤맨다.

[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3호 (2025.08.20~08.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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