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관세협상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트럼프식 모호함이 ‘독’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은아 칼럼]

관세협상 마무리됐지만 디테일 전쟁은 이제 시작 투자 시기·조건·기술이전 등 국익 위한 세부조건 합의를

  • 이은아
  • 기사입력:2025.08.07 14:08:33
  • 최종수정:2025.08.07 14:08:33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관세협상 마무리됐지만
디테일 전쟁은 이제 시작
투자 시기·조건·기술이전 등
국익 위한 세부조건 합의를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려 제작한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모자. 한국방송 갈무리 “화면에 이거를 비춰주실래요? 이게 모자인데요. 마스가 모자.”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한미 관세 협상의 ‘공신’ 구실을 한 ‘마스가 모자’ 실물을 3일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에 착안해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구호로 조선업 부흥을 강조한 정부 협상팀은 이 문구를 수놓은 모자까지 제작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은 이날 한국방송(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직접 붉은 마스가 모자를 손에 들고 소개했다.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려 제작한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모자. 한국방송 갈무리 “화면에 이거를 비춰주실래요? 이게 모자인데요. 마스가 모자.”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한미 관세 협상의 ‘공신’ 구실을 한 ‘마스가 모자’ 실물을 3일 공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에 착안해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구호로 조선업 부흥을 강조한 정부 협상팀은 이 문구를 수놓은 모자까지 제작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은 이날 한국방송(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직접 붉은 마스가 모자를 손에 들고 소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1기였던 2020년 미국과 중국은 무역합의를 체결했다. 중국이 농산물을 포함한 미국 제품을 대규모로 더 구매하고, 미국은 당초 계획했던 추가 대중 관세 부과를 철회하고 일부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는 것이 골자였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2년간 미국 농산물 400억~500억달러 어치와 미국 공산품과 서비스·에너지 분야에서 2000억달러어치를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 500억달러는 당시 중국의 연간 미국 농산물 수입 규모보다 2배가량 많은 액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최대의 무역합의’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무역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큰 숫자를 내세워 정치적 상징성 과시에 집중하는 트럼프 대통령다운 협상과 그 결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전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협상 역시 ‘승리 선언’을 먼저 한 후 세부사항은 나중에 정하는 방식으로 매듭지었다. 관세율을 제외한 주요사항은 불분명한 영역에 남겨졌다. 협상 상대국에서는 미국과 다른 말이 흘러나오고 있고, 투자자들의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의 협상 결과를 보면 2020년 중국과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EU는 3년 동안 원유·원자로 연료·천연가스 등 미국 에너지 제품을 7500억달러어치 구매하기로 했다. 매년 2500억달러 규모인데 이는 미국이 연간 전세계에 수출하는 에너지 총액의 80%에 달한다. EU가 지난해 미국에서 구매한 에너지 총액의 3배가 넘는 수준이기도 하다. 사실상 EU가 필요한 에너지 전량을 미국에서만 수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에너지 수입 주체도 불분명하다. 협상은 EU가 주도했지만 실제 에너지를 사는 것은 결국 회원국의 민간 기업이다. 그런데 EU가 나라별, 기업별로 구매량을 할당하고 기업들이 이를 따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에너지를 구매할 것인지, 이를 위반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벌써부터 EU의 에너지 구매 약속은 이행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과의 합의 역시 불확실한 것투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타결 직후 “한국은 자동차·트럭·농업을 포함한 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우리 정부는 “쌀과 소고기 추가개방은 없다”는 입장이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통제권에 대해서도 한미간 견해차가 있다. 미국측은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펀드이며 투자 이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정부는 우리가 무조건 돈을 대는 구조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통령실은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해 “진위를 따지는 것이 되레 국익에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부 조건에 관한 추가 협상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설명 대로 ‘전략적 모호함’ 또는 ‘외교적 모호함’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모호함을 국익 극대화를 위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모호함은 반대로 우리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서류상으로 남겨진 것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의미다. 협정문 없이 마무리된 트럼프식 협상이 남긴 모호한 틈새는 결국 우리가 채워 나가야 한다. 우리 정부가 모자까지 제작해 공수하며 공을 들인 ‘마스가 프로젝트’가 한미협력의 상징으로 남을지, 우리 조선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지는 투자조건과 기술이전의 범위 등에 달려있다. 디테일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더구나 상대는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은아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