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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이과생이 태국어 배운다…So what?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 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총장
  • 기사입력:2025.07.04 13:23:29
  • 최종수정:2025.07.04 13: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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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전 세계 관광객 1위 도시가 태국 방콕이다. 푸껫이나 파타야는 단골 신혼여행지고, 치앙마이나 코사무이도 한국인에게 친숙한 휴양지다.

친근한 태국의 아름다운 경치와 맛집과는 달리 태국어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철자는 구분조차 쉽지 않고, 짧은 문장이라도 비슷하게 발음하기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태국어를 이과생이 배우겠다고 한다.

올해 국내 수도권 유명 사립대학 17곳의 인문계 340개 학과 정시 모집에서 고등학교 이과생이 50% 이상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한양대 영어교육과, 세종대 법학과 등의 21개 인문계 학과의 정시 모집생 100%가 이과였다. 여기에 한국외대 태국학과도 포함되었다. 2022학년도 통합수능 도입 이후 수학 선택과목인 미적분·기하의 표준점수가 높게 형성된 자연계 학생들이 인문계열 학과에 교차 지원을 하는 현상을 두고 ‘문과 침공’이라 우려한다. 수학에 뛰어난 이과생이 대학 서열에 따라 인문학을 전공하게 되면 자퇴생이 늘어난다는 비판도 있다. 참으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시각이다.

전통적 산업 시대에는 정해진 경로가 있고, 구분된 영역이 명확했다. 문과와 이과 역할이 자로 재듯이 나누어졌고, 문과생이 기획하고 이과생이 만들어냈다. 낭만과 합리가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학제의 벽에 갇힌 기술적·반복적 학습은 지식의 넓이는 좁히고, 통찰의 힘은 약하게 한다. 얇게 쪼갠 지식을 하나만 깊게 잘 알면 평생 먹고살 수 있었다. 이제 형식적인 지식은 필요할 때마다 AI가 손안에서 해결한다. 굳이 머릿속에 넣을 필요가 없어졌다. 노련한 개발자조차 AI의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술은 더 이상 인간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스스로 문제를 고안하고 해석하며 창의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다. 과거의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AI에 제대로 질문하는 능력이 우선된다. 문과와 이과의 칸막이를 쳐서는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의 난제를 해결할 길이 안 보인다. 이제까지는 문과생과 이과생이 별도로 공부하다 뒤늦게 현업에서 만나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진정한 융합으로 보기 어렵다.

근본부터 달리 생각해야 한다. 과거 구분은 시대적 유물이 되었다. 문과생에게는 수학적 사고력, 논리적 분석력, 시스템적 접근이 요구되고, 이과생에게는 문학적 상상력, 철학적 고민, 협업적 정서가 필수적이다. 태생부터 융합형 적성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이과생 100%로 운영되는 한국외대 태국학과 학과장에게 신입생 적응력이 어떤지 문의했다. 이과생이라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논리적으로 언어를 대하게 되어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이과생이든 문과생이든 태국에 대한 애정이 학과의 소속감에 가장 중요하다.

바야흐로 기성세대의 낡은 이분법으로는 이미 다가온 AI 격랑에 맞설 수 없다. 데이터사이언스나 뇌과학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알아야 하며, 인문학이나 사회과학도 디지털 혁신을 바탕으로 할 때에 과거의 난제를 풀 수 있다. 30년 뒤 세상을 50년 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고등학교에서 주어진 획일적인 적성으로는 미래를 스스로 디자인하는 젊은이의 도구와 기회가 될 수 없다. 바야흐로 듣도 보도 못한 융복합 인재들이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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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 총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7호 (2025.07.09~07.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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