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최근 '노쇼' 사기를 당했다. 손님은 인근 병원 직원이라며 단체 회식을 예약했다. 매출이 떨어지고 있던 터여서 너무나 반가운 단체 예약이었다. 손님은 와인을 미리 구매해 놓으면 나중에 식사 비용을 계산할 때 한 번에 결제하겠다고 했다. 와인업체 계좌번호를 남기며 이곳으로 선입금해 달라고 했다. 수상쩍었지만 혹시라도 단체 손님을 놓칠까 걱정됐던 사장은 와인 구매 대금을 입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약속한 날 손님은 오지 않았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병원에 확인해보니 명함은 조작된 것이었다. 요즘 기승을 부리는 노쇼 사기의 한 유형이다.
노쇼 사기는 경기 불황 속 어떻게든 고객을 붙잡고 싶은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악용한다. 병원, 군부대, 기관, 기업, 정치인, 유명 가수 등을 사칭해서 단체 예약을 잡고 갑자기 취소한다. 고가의 와인 등 특정 제품을 미리 사놓아달라고 요구하며 특정 업체로 계좌이체를 유도한다.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받고 싶은 자영업자들은 손님을 놓치기 싫은 마음에 사기에 걸려들게 된다. 노쇼 사기단은 조작된 명함을 이용한다. 군부대 등 공공기관을 사칭할 때는 회식 비용을 승인받았다는 내부 문서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다.
노쇼 사기는 내수 경기가 침체한 요즘 더욱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최근의 양태를 종합해보면 단순 예약 부도와 달리 조직적, 지능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타깃으로 범죄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최근 노쇼 사기가 자영업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지만 법적으로 예방 조치가 미흡해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쇼 사기는 전화 기반의 비대면 범죄라는 점에서 보이스피싱과 유사하지만, 현행법상 보이스피싱으로 분류되지 않고 일반 사기 범죄로 취급된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기 이용 계좌의 지급 정지와 피해자 환급 절차 규정에서 노쇼 사기는 제외되고 있어 소상공인들은 피해금 회수는커녕 사기 계좌 동결도 어렵다. 노쇼 사기에 대해 경찰을 비롯한 범정부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법의 사각지대를 메울 입법 보완도 마련돼야 한다.
[이선희 컨슈머마켓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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