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에 1번 국도가 있다면 우리나라 동해에는 7번 국도가 있다. 둘 다 태평양을 끼고 달린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7번 국도에선 미국 1번 국도에 없는 것이 자주 보인다. 바닷가 주변에 우뚝 솟은 아파트들이다. 며칠 전 강원도 속초와 고성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이런 곳에 꼭 아파트를 지어야 하나"고 볼멘소리를 한다.
내년 초 입주 예정인 고성의 어느 아파트는 15~29층 건물 8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부동산업체는 해수욕장까지 걸어서 10분임을 강조한다. 바다 조망은 물론이고 울산바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아파트에 살 사람들에게는 분명 매력이겠지만 기대와 추억을 품고 동해를 찾는 사람에게는 김새는 일이다. 울산바위와 동해 바다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이 어째서 회색 콘크리트 단지여야 한단 말인가.
양양 고속도로가 뚫리고 동해안이 은퇴 후보지로 뜨면서 한때 속초 일대에 '세컨드 하우스'를 장만하려는 수요가 폭증했다. 지금 보는 '오션뷰 아파트' 상당수가 그 유행의 산물이다. 경치 좋은 곳에 집 짓는 것은 인간의 심미 본능이다. 다만 심미안의 수준이 낮은 게 문제다. 건축업자는 바닷가에 서울 강남과 똑같은 생김새의 아파트를 짓겠다 하고 지자체는 그런 설계도에 도장을 꽝 찍어준다. 인구 유입과 세수 증가 기대에 지역 특색은 안중에 없다. 그 결과 속초는 해안과 구릉이 이어지는 천혜의 미항임에도 도시를 채우는 건물은 아무 디자인적 고려가 없다. 경관 있는 곳은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가 점령하고 남은 상가와 단독주택들은 남루하다. 한마디로 '난개발'이다.
모든 해안 도시가 산토리니나 두브로브니크처럼 단색 지붕과 벽으로 단장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건물은 주변과 어우러져야 한다. 일본은 한국 근대도시 건축의 원형질이지만 우리처럼 아무 데나 아파트를 짓지는 않는다. 시골은 정돈되고 조화롭다. 국민소득은 일본을 넘어섰어도 공간 미학만은 개발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동해에 가면 아파트 대신 다른 걸 보고 싶다.
[노원명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내년 초 입주 예정인 고성의 어느 아파트는 15~29층 건물 8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부동산업체는 해수욕장까지 걸어서 10분임을 강조한다. 바다 조망은 물론이고 울산바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것은 아파트에 살 사람들에게는 분명 매력이겠지만 기대와 추억을 품고 동해를 찾는 사람에게는 김새는 일이다. 울산바위와 동해 바다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이 어째서 회색 콘크리트 단지여야 한단 말인가.
양양 고속도로가 뚫리고 동해안이 은퇴 후보지로 뜨면서 한때 속초 일대에 '세컨드 하우스'를 장만하려는 수요가 폭증했다. 지금 보는 '오션뷰 아파트' 상당수가 그 유행의 산물이다. 경치 좋은 곳에 집 짓는 것은 인간의 심미 본능이다. 다만 심미안의 수준이 낮은 게 문제다. 건축업자는 바닷가에 서울 강남과 똑같은 생김새의 아파트를 짓겠다 하고 지자체는 그런 설계도에 도장을 꽝 찍어준다. 인구 유입과 세수 증가 기대에 지역 특색은 안중에 없다. 그 결과 속초는 해안과 구릉이 이어지는 천혜의 미항임에도 도시를 채우는 건물은 아무 디자인적 고려가 없다. 경관 있는 곳은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가 점령하고 남은 상가와 단독주택들은 남루하다. 한마디로 '난개발'이다.
모든 해안 도시가 산토리니나 두브로브니크처럼 단색 지붕과 벽으로 단장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건물은 주변과 어우러져야 한다. 일본은 한국 근대도시 건축의 원형질이지만 우리처럼 아무 데나 아파트를 짓지는 않는다. 시골은 정돈되고 조화롭다. 국민소득은 일본을 넘어섰어도 공간 미학만은 개발 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동해에 가면 아파트 대신 다른 걸 보고 싶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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