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열린 6경제단체와 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2025.06.13.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호영 기자]](https://wimg.mk.co.kr/news/cms/202506/15/news-p.v1.20250615.aaf2aad02b7c459d86ea6305232389a9_P1.jpg)
모든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지지와 혐오의 대상이다가 퇴임 후 시간이 흐르면서 객관적 평가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IMF를 맞았던 나는 한때 YS를 생각하면 가운뎃손가락이 올라갔으나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주저 없이 그를 꼽는다. 그는 남자들이 지금보다 통이 컸던 시대에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통이 큰 남자였다. 장난기와 심술보가 두드러진 YS 얼굴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로든 ‘문제적 대통령’이었던 노무현도 시간과 더불어 좋아지는 대통령이다. 그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말을 훨씬 격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손해를 많이 보았다. 기분 나쁜 상대에는 일단 한번 어깃장 걸고 쏘아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만일 그가 말보다 생각을 더 격하게 했다면 대한민국이 손해를 봤을 것이다.
이명박은 이념이 탈색된 상업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편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념적이지 않은 바람에 쓸데없이 신경 돋울 일이 적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빛의 속도로 빠져나왔고 미국 대통령과 잘 지냈고 세계 6번째 원전 수출국이 되고 자원외교도 벌였다.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명박이 장사꾼이어서 손해 본 국민보다는 덕 본 국민이 많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YS와 노무현의 매력에는 동의할 것 같은데 이명박에 대한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이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의 업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이후 대통령들은 경제에 무심하거나 무능했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이렇게 12년을 겪고 나니 옥토가 사막으로 변하듯 망가진 산업이 한두곳이 아니다. 대통령이 모든 걸 다 책임질 수는 없지만 국가 산업 경쟁력은 대통령 책임이다. 그것만 잘해도 두고두고 칭송 받는다.
탈원전에서 보듯 문재인은 얕고, 그나마 잘못된 인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고집으로 유명했다. 그 고집 이 부른 후유증에서 대한민국은 지금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은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 데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소싯적에 읽은 밀턴 프리드먼 한권을 밑천 삼아 모든 주제에 대해, 그것도 60분 중 50분을 혼자 떠드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변은 게으르고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 대통령이 문재인과 윤석열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 산업 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포지션에 이념가나 책상물림 대신 한국 생존전략에 대한 개념이 서 있는 전문가를 앉히고, 그들이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 직언이 옳다고 판단되면 대통령 본인의 생각을 바꾸고, 회의에서 본인 생각을 말하는 대신 이행 사항을 점검하는 것. 박정희는 했고 문재인과 윤석열은 못 했던 일이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의 ‘기후에너지부’ 신설 공약이 마음에 걸린다. 기후 정책을 에너지 정책과 섞었을 때 만들어질 결과가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될 가능성을 여러 사람이 걱정한다. 불가능한 목표라는 얘기다. 적어도 이 대통령 임기 중에 기후와 에너지 동행이 산업경쟁력과 모순 없이 병립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기왕 에너지 부처를 신설한다면 설계가 중요하다. 아마도 그 작업을 주도하게 될 이재명 정부의 첫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누구를 앉히느냐가 중요하다. 현실보다 이념이 앞서는 인간형, 자기 생각은 없고 대통령 생각을 떠받드는게 유일한 목표인 예스맨이 앉으면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을 주도한 서푼짜리 이념의 백면서생과 영혼이 없었던 공무원들을 기억해야 한다. 현장을 알고 본인 스스로 학습 능력이 있으면서 대통령과 논쟁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일을 떠맡아야 실패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취임 후 10일 남짓 이 대통령이 일하는 것을 보니 머리가 굳지도, 고집이 세지도,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다는 인상을 주지도 않는다. 간만에 ‘산업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앞서 성공한 산업 대통령들은 부지런하고 스마트하며 시대를 읽는 안목이 있었다. 이 대통령의 안목을 기대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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