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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데스크] 美中패권경쟁이 촉발한 의전 인플레

트럼프·시진핑 해외순방때
극진한 환대 현상 두드러져
백악관 "中 영향력 우려"에
한국, 美경계심 해소 급한데
외교 의전은 또다른 시험대

  • 기사입력:2025.06.05 17:34:06
  • 최종수정:2025.06.05 17: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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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해외 순방 시 극진한 환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상급들이 직접 공항 영접을 나올 정도로 미·중 정상을 대하는 세계 각국의 의전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이다.

지난달 13~16일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로 집권 2기 첫 해외 순방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그야말로 최고 대우를 받았다.

하늘길부터 눈길을 끌었다. 방문국 전투기들이 트럼프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 양옆을 근접 에스코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직접 그를 맞이했다. 이는 2022년 7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때와 큰 차이가 났다. 당시에는 왕세자보다 격이 낮은 메카주 주지사가 공항에 나왔고, 빈살만 왕세자는 왕궁에서 기다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카타르, UAE에 도착했을 때는 각각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나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카타르로부터 약 4억달러의 보잉 747-8 항공기 선물까지 받아 큰 화제를 모았다. 이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전용차 호위 도심 행렬에는 카타르의 전통 환대 방식인 수십 마리의 낙타, 아라비아말까지 동원됐다.

시 주석에 대한 예우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시 주석의 지난 4월 14~18일 아세안 3개국(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순방 당시 영접 외교가 큰 화젯거리였다.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하러 나간 인사는 베트남 서열 2위인 르엉끄엉 국가주석이었다. 또 시 주석의 말레이시아·캄보디아 방문 땐 각각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과 38년간 집권한 훈센 전 총리(현 상원의장)가 공항에 나왔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극진한 예우를 갖추는 것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자칫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이후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 수호자라기보다는 동맹국에도 '관세 청구서'를 들이미는 자국 우선주의 모습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중국 고립 작전'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트럼프발 관세에 대한 전 세계 불만을 역이용하면서 신흥국은 물론 미국의 전통 우방인 유럽연합(EU) 등과 협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 전 세계 각국이 혹시 모를 불똥이 튀지 않도록 양대 강국(G2) 정상 의전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는 분위기다. 이미 전 세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한 '모욕 외교'를 충격 속에서 지켜봤다.

이는 이제 막 출범한 한국 새 정부에 부담이다. 계엄 사태 이후 지난 6개월간 외교 공백으로 하루속히 정상 외교를 복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높아진 '의전 프로토콜'은 새로운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동맹에 방점이 찍혔지만 미국 백악관은 "중국의 영향력을 우려한다"란 메시지를 내놓았다. '한미 동맹 강화' 좌표를 분명히 하면서 미국의 경계심을 풀어야 하는 것이 시급한데, 한층 높아진 '의전 레벨'에 대한 대응은 또 다른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물론 한국은 중동, 아세안 국가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현실적으로 정상 외교에서 비행기를 선물로 제공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의전 눈높이'를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장용승 글로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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