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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트럼프의 '더티 15'가 '빅 15'로 바뀌기까지

교역 흑자국 콕 찍어 "더티 15"
상호관세 으름장 놓던 美정부
한달뒤 적대감 뺀 "빅 15" 표현
'징벌'서 '협상'으로 변화 의미
동맹 협상 속히 끝내겠단 의도
달라진 美정부 기류 읽어내야

  • 최승진
  • 기사입력:2025.04.21 17:24:09
  • 최종수정:2025.04.21 17: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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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더티(dirty) 15'라는 용어를 처음 쓴 날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이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가 '더티 15'라고 부르는 국가들이 있는데, 이들은 상당한 관세를 (미국에)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티 15'를 '미국 교역량에서 엄청난 규모를 차지하는 세계 15%의 국가'라고 설명했다. 또 '관세 못지않게 상당한 비관세 장벽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부연했다.

당시는 트럼프 행정부가 교역 상대국이 관세·비관세 장벽을 고려해 책정한다던 상호관세 발표를 2주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관세가 어떤 형태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던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교역 상대국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노출된 것이다. '지저분한' 무역관행 탓에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인식. 교역 상대국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와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시장 친화적이고, 관세정책에 대해 신중한 입장으로 알려졌던 베선트 장관의 입에서 이 같은 말이 나온 것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더티 15'에는 미국의 동맹국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속한 국가의 리스트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를 고려하면 한국은 당연히 포함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지저분한' 국가들을 상대로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슬 퍼런 엄포는 리더십 부재의 한국에 극심한 불안감을 안겨줬다.

그로부터 한 달간 많은 일이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난 2일 상호관세 강행 이후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1주일 뒤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그리고 베선트 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무역협상을 맡겼다.

급기야 협상을 총괄하는 베선트 장관의 입에서 다른 표현이 등장했다. '15'라는 동일한 숫자 앞에 '더티' 대신 '빅(big)'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다. 이 표현이 나온 것은 지난 17일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였다. 이 자리에 배석한 베선트 장관은 "우리는 '빅 15' 경제국과 협상을 우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본과의 회담이 "환상적"이었으며 한국과 유럽연합(EU), 인도와 협상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빅 15' 국가와 '더티 15' 국가 리스트가 동일한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상대국을 표현하는 수식어가 바뀌게 된 기류는 읽을 필요가 있다. 전자가 불공정 관행을 벌여온 '징벌 대상'의 뉘앙스라면, 후자는 부정적 의미보다는 '일정 규모 이상'의 교역 상대국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게중심이 징벌적 관세에서 무역협상으로 옮겨졌다는 의미다. 이 같은 기류 변화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관세에 대한 시장 불안감이 여전한 가운데 동맹국과의 협상부터 매듭짓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DC에서 미국과 협상을 벌인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이 협상을 두고 '빠른 속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급한 것은 미국이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언제 또다시 입장을 바꿀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잊어선 안된다. 백악관 안에선 관세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다른 참모들 간에 치열한 알력 다툼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승진 워싱턴특파원 sjchoi@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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