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목 대행 내각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듯한, 그보다는 가장 신나 보이는 장관이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다. 요사이 그는 여러 신문 인터뷰에 등장하고 있는데 말이 자못 비장하다. 가령 1월 22일 자 중앙일보 인터뷰 제목은 “2월 넘기면 물에빠져 죽는단 심정으로 협상...의정갈등 풀 것”이다. 이 장관은 이달 18일 김택우 신임 의협회장과 비공개 회동을 갖고 “서로 욕먹을 각오 하고 담판 짓자”는데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이 장관은 2026년도 의대 정원과 관련해 ‘제로베이스’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마이너스도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때 제로베이스는 2025학년도 증원을 무효화해 이전 3058명 체제로 복귀하는 것이다. 마이너스는 3058명에서 더 줄이는 것이다. 2025년도 증원으로 의사들이 입은 ‘손해’를 벌충해 주는 의미가 있다. 정부는 과거에도 ‘제로베이스’ 논의를 여러 차례 입에 담았지만 그때는 의사들을 대화방에 끌어들이기 위한 립서비스였다면 지금은 ‘기정사실’처럼 거론되고 있다. 이제 관건은 마이너스까지 가느냐, 3058에서 멈추느냐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12.3 계엄으로 끝장이 났다. 남은 것은 ‘항복조인식’과 이를 위한 패전협상뿐이다. 이 굴욕적인 협상을 자임하고 나선 이주호 장관은 ‘멸사봉공’의 투혼을 발휘하는 것인가. 본인은 그렇게 봐주길 바라겠지만 오히려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왜 그런가. 이 장관은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함께 의대증원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주무장관이다. 그냥 그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락없는 ‘탈레반’이었다. 그는 의료사태 와중에 엉뚱하고 무리한 발언으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8월 말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이 장관은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고 했다. 의료사태 수습이 요원해지면서 여론이 싸늘하게 돌아서고 여당 의원들이 노심초사할 때였다. 그런 의원들을 상대로 ‘내년이면 전공의도 돌아오고, 휴학생도 돌아온다’고 호언장담했던 사람이 이 장관이다. “(국군이 북진하면) 아침은 해주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말로 이승만 대통령의 가슴을 웅장하게 했던 신성모 국방부 장관 분위기가 났다. 이 발언은 냉담한 의사들을 모처럼 웃게 만들었다. ‘웃기고 있네.’
약 한 달 후인 10월초 교육부는 느닷없이 ‘의대 5년제’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의대생 집단 휴학계 제출로 신규 의사 배출 공백이 예상되니 의대 교육 과정을 6년에서 5년으로 줄이겠다는 아이디어다. 이 번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의대증원 찬성론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웃게 했다. ‘수의학과도 6년을 가르치는데...’ 여론이 심상치 않자 이 장관은 ‘강제로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하면서 발뺌했다.
서울대 의대 학장이 직권으로 의대생 휴학을 승인하자 이 장관은 10월9일 국회에 출석해 “휴학할 자유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다”고 했다. 세상에 휴학할 자유가 없는 학생도 있다? 말과 생각이 여러모로 튀는 장관이다. 10월 15일엔 “의대생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유급과 제적은 불가피하다”고 엄포를 놓았고 그즈음에 자체 휴학승인한 서울대를 상대로 감사를 벌였다. 그러다 10월 29일에 의대생 휴학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고 발표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으되 역시 느닷없다는 느낌을 줬다.
그즈음 ‘이주호는 어떤 사람이에요’하고 내게 물어온 분이 한명 있었다. ‘인격이 튄다’는 말로 들렸다. 나는 ‘말이 글보다는 들어줄만 하다’고 답했다. 한때 외부 필자들을 상대하는 보직에 있으면서 이 장관(그때는 야인이었다)의 글을 받아본 적이 있다. 여럿이서 하는 점심을 함께한 적이 있고 강연을 한번 들어보았다. 그는 달변은 아닌데 그래도 글보다는 말이 덜 따분했다. 글은 엣지가 없고 말은 튀는 스타일이다.
어떤 사태를 맺고 끊는 데 있어 다수가 공감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급하다고 어지럽게 마무리 지으면 상처는 덧나고 교훈을 얻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장관이 의료사태 수습 전면에 나서는 것은 격 있는 처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의료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이다. 조규홍 장관도, 박민수 복지부 차관도 사퇴해야 한다. 사태 수습은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최상목 대행이 의료사태 수습을 이주호 장관에 일임했다고 하는데 그 일임을 거둬들이길 바란다. 이 장관은 그럴 자격이 없다. 그가 ‘패전협상’을 진행하면 의료개혁 좌절에 열받은 국민은 정말 열받을 것이다.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 할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하면서 그에게 꿀밤 먹이고 싶어 할 것이다. 혹시 아는가. 야당이 최 대행마저 탄핵하면 그다음은 이주호 대행체제다. 거참 볼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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