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뉴욕주 마운틴 키스코의 반즈앤노블(Barnes & Noble) 개업 소식에 마을 전체가 들썩였다는 기사가 지역신문에 실렸다. 시장과 함께 상공회의소 멤버들이 개업 축하 리본을 잘랐고, 그 지역 출신 작가도 참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서점이 문을 닫은 지난 13년 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며 “자연스럽게 만나는 모임 장소, 선물 가게, 카페 등의 역할을 함께 했던 서점이 돌아와 반갑다”고 기뻐했다. 비슷한 시기에 워싱턴DC 조지타운대에 입점하는 반즈앤노블도 화제였다. 2011년 회사가 망하며 철수했던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입점했다.
아마존 등장으로 위기에 빠졌던 세계 최대 오프라인 서점 반즈앤노블이 부활의 신호탄을 울렸다. 동네 서점을 창업한 경험이 있는 구조조정 전문가와 ‘북러버(Book Lover)’ 직원들이 반즈앤노블을 지역 기반의 ‘동네 사랑방’으로 재탄생시켰다.

한때 동네 서점 문 닫게 한 골리앗
2011년 아마존 등장에 2019년 매각
반즈앤노블은 1873년 찰스 반스가 일리노이주 휘턴에 세운 소규모 서적 회사가 모태다. 1917년 아들 윌리엄 반스와 클리포드 노블이 뉴욕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서점을 열었다. 1971년 레오나드 리지오 최고경영자(CEO)가 경영난에 빠진 반즈앤노블을 인수했고 이때부터 성장 가도를 달렸다.
반즈앤노블은 동네 서점을 벌벌 떨게 했다. 커피와 편안한 의자, 테이블을 갖춰 지역사회 허브 역할을 하는 곳으로 매장 콘셉트를 잡았다. 1990년대 말 뉴욕에 25개, 미국 전역에 1000여개에 달하는 지점망을 거느린 세계 최대 서점 체인망으로 성장했다. 당시 미국 내 판매 서적 8권 중 1권은 반즈앤노블에서 팔렸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빠르게 시장을 지배하며 지역 소규모 독립 서점을 문 닫게 하는 ‘골리앗’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혁신의 상징’ 반즈앤노블도 또 다른 천적이 있었다. 2011년 등장한 아마존이다. 온라인 붐이 일어나며 도서 구입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반즈앤노블은 아마존이 온라인으로 첫 책을 판매한 지 약 2년이 지나서야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출범시켰다. 2009년엔 아마존 킨들에 대항해 ‘누크(Nook)’를 선보이며 전자책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누크는 프리미엄 시장을 노린 애플과 저가 태블릿PC를 내세운 아마존에 밀렸다. 반즈앤노블은 온라인 전략이 성과를 거두지 못해 재무 부담이 커졌고, 2019년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매각됐다.

책방 창업해본 전문가 부임
점장에 전권…매장마다 차별화
책을 안 읽는 문화가 확산하며 반즈앤노블 위상은 그대로 추락하는 듯했다. 그러나 한 명의 최고경영자(CEO)가 분위기를 바꿨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제임스 돈트(James Daunt)를 새로운 수장에 앉혔다. 그는 영국 출신의 구조조정 전문가다. 특히 한 가지가 남달랐다. 그는 2000년대 동네 서점(돈트책방)을 창업해 운영한 경험이 있다. 2011년에는 영국 워터스톤즈 서점 체인도 기사회생시켰다. 한마디로 책을 잘 아는 CEO였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책으로 돌아간 서점, 반즈앤노블’이라는 이름으로 반즈앤노블 성공 비결을 꼽았다.
첫째, 반등 비결은 제임스 돈트 CEO의 ‘점장 중심 자율 운영’이다. 반즈앤노블은 과거 본사 운영 방침을 지점에 전파하는 ‘톱다운’ 전략을 썼다. 지점은 본사가 내린 통일된 재고 목록, 동일한 진열 기준을 따랐다. 이 방식은 지역 특색이나 지역민 독서 취향,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했다.
돈트 CEO는 매점 점장에 책을 배열할 수 있는 큐레이션 권한을 부여했다. 지점장은 지역 독자 성향을 분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가를 구성했다. 예를 들어 뉴욕 브루클린 매장은 젠더 이슈와 문화 비평 섹션에 힘을 줬다. 텍사스 매장은 종교 서적이나 서부 소설 코너를 전면에 배치하며 지역 주민 취향을 반영했다. 온라인 서점이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도록 했다면, 반즈앤노블은 직원이 정성껏 큐레이션한 책을 진열해 낯선 공간을 탐험하는 느낌을 주도록 기획했다.
때론 지역 출신 작가의 책을 특별하게 전시해 지역 고객 자부심을 북돋웠다. 또한 서점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환대의 장소’가 되도록 이끌었다. 심지어 계절마다 그 계절을 느낄 수 있도록 조명, 인테리어, 책 배치 등을 다르게 구성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이 사람들을 서점으로 불러들인 셈이다. 고객 경험이 다채로워지자 방문율은 크게 늘었다.
돈트 CEO는 점장 권한을 강화하며 출판사로부터 광고비를 받고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해주는 관행을 없앴다. 그는 “진열대 판매는 책에 대한 존엄성을 파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돈트 CEO 취임 전 출판사 중심으로 책을 진열했을 때 25%에 달했던 반납률은 ‘책’을 중심으로 진열하며 9% 이하로 떨어졌다. 반납률 25%는 서점 공간과 인력이 그만큼 비효율적으로 사용됐다는 의미였다. 돈트 CEO는 이를 낮추기 위해 ‘책’ 그 자체에 더욱 집중했다.
둘째, ‘책을 사랑하는’ 직원이 매장을 운영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예전에는 유통 업계나 대기업 출신 관리자가 매출에 집중했다. “책을 파는 일이 유통이 아니라 예술과 서비스”라고 밝힌 돈트 CEO는 ‘책’이라는 전문성에 기반을 두고 조직을 개편했다.
본사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매장에 힘을 실었다. 점장은 사내 직원 중심으로 채용했다. 신입 직원은 매장에서 2년 이상 고객을 만나도록 현장경영을 강화했다. 직원 자존감은 높아졌고 고객과 가까워졌다. 내부 조사 결과, ‘책 이해도가 높은 직원이 많은 매장일수록 고객 체류 시간과 고객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객은 반즈앤노블 직원을 ‘동네 책방 주인’처럼 여기게 됐다.
SNS 인기 작가 서적 발 빠르게 공급
서점 본질은 ‘책’…非서적 매출 줄여
셋째, ‘당연히’ 온라인도 적절하게 활용했다.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Z세대 커넥트(연결)’다. 틱톡 내 ‘북톡(BookTok)’ 커뮤니티에서 인기 있는 작가 책을 적극 판매했다. 전국 매장에 ‘북톡 화제의 책’ 코너를 신설했고, SNS 피드백을 활용해 각종 책을 진열했다. 틱톡에서 본 책을 반즈앤노블 오프라인 매장에서 탐색하는, ‘디지털-오프라인 연결고리’를 만든 셈이다.
정태수 삼성글로벌리서치 수석연구원은 “멤버십 프로그램을 개편해 출간 전 이벤트 참여 기회 부여, 한정판 선구매 혜택을 확대했다”며 “특정 신간을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홍보하는 데이터 기반 마케팅을 펼쳐 독서 커뮤니티를 이끄는 플랫폼 역할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도서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꿨다. 최근 많은 서점이 책보다 레고, 보드게임, 퍼즐, 달력, 문구 등 비(非)서적으로 진열대를 꾸민다. 책보다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돈트 CEO는 “우리는 유통 기업이 아니라 서점”이라며 책을 사러 가는 경험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책 매출이 선물 상품보다 높아졌고 고객 체류 시간이 늘어났다.
돈트 CEO의 리더십 아래 반즈앤노블은 다시 확장의 길로 들어섰다.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매장을 키워 2024년 58개 서점을 개장했다. 올해도 비슷한 속도로 확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2022년 아마존이 오프라인 서점 68개의 문을 닫았는데, 그중 반즈앤노블이 매장을 이어받아 개점한 곳이 있다. 아마존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지 못한 채 파산했던 반즈앤노블의 과거를 생각하면 극적인 장면이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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