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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고시’에...강남 3구 아동 우울증 ‘빨간불’ [국회 방청석]

최근 5년 간 건보료 청구 건수 보니 9세 이하 아동 우울·불안장애 청구 급증 지난해 강남 3구 평균, 서울 평균의 3.8배 “교육부, 실태조사·종합대책 마련해야”

  • 조동현
  • 기사입력:2025.04.26 13:00:00
  • 최종수정:2025.04.26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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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 간 건보료 청구 건수 보니
9세 이하 아동 우울·불안장애 청구 급증
지난해 강남 3구 평균, 서울 평균의 3.8배
“교육부, 실태조사·종합대책 마련해야”
‘사교육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사는 만 9세 이하 아동의 정신 건강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사교육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사는 만 9세 이하 아동의 정신 건강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하며 한국의 영유아 사교육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교육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사는 만 9세 이하 아동의 정신 건강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강남 3구 거주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불안장애로 인한 건강보험료 청구 건수는 최근 5년간 3배 넘게 늘었다. 2020년 1037건이었던 청구 건수는 2021년 1612건, 2022년 2188건, 2023년 2797건, 지난해 3309건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5년간 총 청구 건수는 1만943건에 달했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송파구가 1442건, 강남구 1045건, 서초구 822건으로 각각 집계됐다. 지난해 강남 3구의 구별 평균 청구 건수는 1103건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평균(291건)의 3.8배나 됐다. 영유아·아동의 정신 건강 문제는 서울 강남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심각하다. 같은 기간 전국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불안장애 건보료 청구 건수는 2020년 1만5407건에서 지난해 3만2601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번 심평원 자료는 해당 기간 내 심사 완료된 건강보험 명세서 기준으로 작성됐다. 우울에피소드(F32·질병코드)와 재발성우울장애(F33)는 우울증으로, 공포성불안장애(F40)와 기타불안장애(F41)는 불안장애로 각각 분류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정신 건강 문제는 강남 3구의 높은 영유아 사교육 집중도와 맞물려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은 총 240곳으로, 이 중 59곳(25%)이 강남 3구에 몰려 있다. 특히 서울 25개 자치구의 평균 영어유치원 개수는 9.6개인 반면, 강남 3구는 19.7개로 2배 이상 많았다. 이들 학원은 입학 전부터 영어 레벨 테스트를 요구하며, 아이들은 만 4세에 ‘시험장’에 앉는다. 이른바 ‘4세 고시’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0~9세 서울시 전체 구 대비 강남 3구 불안장애 건강보험료 청구 현황. (진선미 의원실)
0~9세 서울시 전체 구 대비 강남 3구 불안장애 건강보험료 청구 현황. (진선미 의원실)

심지어 ‘4세 고시’는 사교육 시장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는 추세다. 교육부가 3월 13일 발표한 ‘2024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주요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7~9월 3개월간 전국의 6세 미만 영유아 1만3241명을 조사한 결과 6세 미만 영유아의 47.6%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었다. 2세 이하 24.6%, 3세 50.3%, 4세 68.9%, 5세 81.2% 등 연령이 높을수록 참여율도 증가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 ‘4세 고시’ ‘7세 고시’ 논란이 불거지면서 영유아 사교육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라며 “이번 자료는 조기 학습 스트레스가 실제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영유아 사교육 실태는 해외에서도 주목할 정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의 학문적 경쟁이 6세 미만의 절반을 입시 학원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가 최고의 대학과 몇 안 되는 대기업에서의 고소득 일자리를 위한 강도 높은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학원에 의존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교육비 부담 증가는 젊은 층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면서 전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선미 의원은 “신체적·정서적 발달이 이뤄져야 하는 시기에 과도한 학습 부담과 경쟁 스트레스로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며 “4세 고시 같은 조기 선행 학습 과열 현상으로부터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위협받지 않도록 교육부가 영유아 사교육 실태조사를 비롯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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