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은행권을 중심으로 6·3 조기 대선과 맞물려 ‘정치금융’ 리스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정치금융은 국가·정치권력과 금융기관 간 상호작용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정치적으로 왜곡되거나 시장 자율성이 훼손되는 현상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유력 대선 주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가 은행권 상생금융 확대 논의를 본격화하자 금융권에선 긴장감이 팽배하다.
전문가들은 정치금융 논란이 은행 이익 평가와 사회경제적 책임까지 얽힌 다중 이슈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권력 개입으로 금융권 의사결정이 왜곡되고 시장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단 점에서 정치금융 고착화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금융권을 향한 쓴 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막대한 이자이익에 정부 라이선스 기여도가 압도적이란 사실은 은행권에 뼈아픈 대목이다. 이는 현실 경제에서 정부·정치권 개입의 빌미로 작용하고 정치금융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4대 금융지주, 올해도 ‘실적 잔치’
정치권, 상생금융 논의 군불
‘전당포 영업’이란 날 선 비판에 직면한 은행권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낼 전망이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올해 연간 순이익 전망치는 17조6197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16조5268억원)보다 7% 증가한 규모로, 또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4대 금융지주는 지난해에도 최고 실적을 갈아치웠다.
막대한 이자이익을 거뒀지만, 은행권 속은 편치 않다. 조기 대선을 통해 누가 집권하더라도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논의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은행권은 특히 여론조사 1위 이재명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의 정책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최근 금융권을 겨냥한 국회 입법 활동은 물론, 이 후보의 대선 공약 개발도 활발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회에 따르면, 은행 대출 가산금리를 손보는 내용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이 지난 4월 17일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은행이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각종 보험료와 출연료 등을 포함하지 못하게 하는 게 개정안 뼈대다. 출연료와 보험료에는 예금 보호를 위한 예금보험공사 납부금,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한 보증 수수료 등이 포함된다. 은행권에선 이를 대출 위험 분산을 위한 비용으로 보고 실질적인 금융상품 ‘원가’로 다뤄왔다. 이 때문에 출연료와 보험료 등을 가산금리 산정 때 관행처럼 포함했다. 은행권은 개정안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난해 개정안과 비교하면 규제 수위가 그나마 낮아졌고 정권 교체기라는 민감한 시국 탓이다.
은행권을 겨냥한 정책 논의는 이뿐 아니다. 이 후보의 대선 정책 기구인 ‘성장과 통합’은 은행권 재원으로 상생기금 조성 방안을 검토한다. 은행의 과도한 이자수익에 기여금을 물리는 ‘횡재세’와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0%에서 10%대로 낮추는 방안도 들여다본다. 상생기금의 경우 은행에서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서민·소상공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민한다.
사안별 파급력이 큰 데다 시장 자율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단 점에서 금융권 우려가 팽배하다.
당장 대출 가산금리를 손보는 은행법 개정안부터 발등의 불이다. 개정안이 그대로 실행되면, 출연료 등 연 3조원 이상 비용이 가산금리에서 빠져 그만큼 가산금리는 낮아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조업으로 치면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제반 수수료를 원가에 포함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조치”라며 “상생금융 조성 과정에서 개정안이 전반적으로 조정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권은 횡재세와 법정 최고금리 인하 논의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횡재세는 금융사 연 순이자수익이 지난 5년 평균의 120%를 초과할 경우 이 가운데 40% 이하를 상생금융 기여금 명목으로 징수한 뒤 취약계층·소상공인 지원에 쓰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2023년 11월 “국민 대다수가 고금리에 따른 고통을 겪고 있다”며 횡재세 부과 입법을 추진한 적 있다.
금융권에선 횡재세 재추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상생금융·기금처럼 포장과 내용이 바뀐 형태로 추진될 수 있다고 본다. 횡재세는 정치 지형 확장성을 담보하기 힘들단 점에서 실질적으로 이와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생금융 패키지를 들고나올 가능성이 높단 관측이다. 횡재세와 상생금융 논의가 함께 거론되는 것은 이런 배경일 것으로 금융권은 내다본다.
법정 최고금리 제한도 시장 왜곡을 심화할 수 있단 우려가 짙다. 과거 문재인정부가 서민 보호를 명분으로 법정 최고금리를 연 27.9%에서 20%로 낮췄지만 정작 피해는 서민들이 봤다. 자본 규모가 영세한 군소 대부 업체들이 대손비용을 우려해 저신용자 대출을 대폭 줄여 서민들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몰렸다.
‘전당포 영업’ 정치금융 악순환
규제 틀 바꿔 생태계 육성해야
정치금융 폐단과는 별개로, 은행권을 향한 따가운 시선도 상당하다. 은행은 남의 돈으로 대출을 해줄 수 있는 ‘라이선스’라는 특권에 기대 담보대출 중심 ‘전당포 영업’에 안주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국내 금융권이 사회적 후생 증대라는 순기능을 키우지 못하고 담보대출에 몰두하는 것은 정치금융이 근절되지 못하는 주된 배경으로 지목된다. 이런 식으로 지난해 4대 금융지주가 번 이자이익은 42조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삼성전자·LG전자 영업이익을 더한 것보다 많다.
문제는 제조업과 달리, 은행의 경우 이익 원천을 들여다봤을 때 정부 라이선스를 제외하면 별다른 기여 요인이 관찰되지 않다는 데 있다. 국내 수출 기업은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 치밀한 경영전략을 세우고 사활을 건 연구개발(R&D)로 비용 절감과 혁신을 이뤄 질적 도약을 이룬다. 반면, 은행 이자이익은 가계·기업대출에서 나온다. 가계대출 60% 정도는 주택담보대출이다. 기업대출 역시 신용도 높은 대기업대출이 대부분이다. 이런 구조 아래 국내 은행권은 금리 인상기 땐 대출 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예적금 금리는 천천히 올리는 방식으로, 금리 인하기 땐 대출 금리는 천천히 내리고 예적금 금리는 빠르게 내리는 방식으로 손쉽게 돈을 벌었다.
정치금융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정부·정치권이 은행업 규제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무엇보다 금융과 비금융사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 가속화’ 때문에 은행의 비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금융위는 금융지주의 핀테크 지분 보유 한도(5%)를 25년 만에 15%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당국은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지주회사법’ 및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를 오는 5월 26일까지 진행한다. 다만, 금융당국의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번번이 국회 문턱에 막혔던 터라 갈 길이 멀단 지적도 나온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