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어떤 사람은 보수이고, 어떤 사람은 진보인가.’
이 질문은 그동안 인간의 정치적 태도와 의사결정의 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주요 연구 주제였다. 영국 신경과학자이자 정치심리학자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박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믿느냐’가 아니라 ‘인간은 왜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빠져드는가’를 알아내야 할 차례라고 강조한다. 책은 정치적 신념이 외부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단순한 사회적 산물이 아니라, 뇌에 침투해 신경 구조와 세포 차원까지 연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실험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의 방법론을 활용해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의 뇌는 인지적 유연성이 현저히 떨어지며, 도파민 시스템의 차이까지 발견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실험 사례도 소개한다. 카드 게임을 통해 규칙 변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실험한 결과, 이념적 경직성이 강한 사람은 규칙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 규칙을 고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저항하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경향의 사람은 규칙이 변경됐다는 증거가 있으면 비교적 쉽게 행동을 바꿨다. 이는 극단주의와 인지적 유연성이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이데올로기에 깊이 몰입할수록 현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지금처럼 팬데믹·전쟁·경제 위기 등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극단주의에 빠지기 쉬운 뇌 메커니즘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공포와 두려움은 뇌가 개인의 신념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이유에서다.
책은 이념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극심한 최근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양극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과학적 통찰을 담았다.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신경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