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전기차(EV) 캐즘과 자율주행차(AD) 상용화 지연으로 인해 성장세가 주춤하고,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전기차 시장의 선두주자 테슬라는 물론이고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왔다. 이들이 기존 완성차 시장에 변화를 몰고 오는 열풍을 표현하는 이른바 '체슬라(Chesla=Chinese+Tesla)'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체슬라, 즉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제품 개발과 비용 효율 면에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을 압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경우에는 전기차 플랫폼 개발 주기를 기존 48개월에서 36개월로 줄이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테슬라는 주요 차종의 개발 주기 36개월을 이미 달성했으며 비야디(BYD), 니오(NIO), 샤오펑(Xpeng) 등 중국 주요 전기차 업체들은 18~30개월 수준으로 단축한 상황이다.
기가팩토리 건설에 걸리는 시간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공장을 설계하고, 본격적인 양산 체제에 들어가기까지 48~58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데 비해 체슬라의 경우에는 해당 기간이 그 절반 수준인 20~30개월이다.
비용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테슬라는 차량을 세부 모듈 단위로 나눠 여러 부위를 동시에 제조한 뒤, 이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생산 효율을 높였다. 중국 업체들도 생산 공정 자동화와 인공지능(AI) 기반 품질 검사 시스템 도입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특히 비야디는 차량 부품의 30~60%를 공통으로 사용해 생산단가를 낮추고 시장 출시 속도를 앞당겼다.
테슬라와 중국 기업들의 공세는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 또한 이런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기업들은 경기 침체, 관세, 미·중 갈등을 비롯한 여러 지정학적 리스크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특히 향후 1~2년은 전면적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기에 전방위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 기회의 순간을 잡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핵심 지역별 전략 재구성이 필요하다.
즉, 주요 지역 및 시장별로 특화된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뒷받침할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시장에서는 관세장벽을 극복하면서 비용 효율적인 공급망 현지화 전략이 필수적이며, 중국 시장에서는 특정 EV·AD 모델을 테스트베드로 삼는 차별화된 접근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파트너십 및 투자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중국 시장에서는 '중국화(China for China)' 전략이 중요하다. 커넥티드카 솔루션 등 분야에서 현지 파트너를 확보하고, 경쟁력 있는 중국 협력업체를 발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빠른 중국 시장에서는 배터리 생태계에 대한 전략적 접근도 중요하다. 향후 2차전지 시장의 빠른 성장에 대비해 중국 기업들은 배터리 생산의 가치사슬을 확장하고,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내재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들 기업은 다양한 정보기술(IT) 및 에너지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고부가가치 사업 포트폴리오로 영역을 확장하며 시장 내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셋째,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Software Defined Vehicle)'으로 전환과 같은 핵심 역량의 경우 업체 간 과감한 협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차별화가 적은 SDV 미들웨어(운영체제와 애플리케이션 사이에서 통신, 시스템 관리, 소프트웨어 조율 등을 담당하는 기술 영역)의 경우 오픈소스 기반 협업 모델을 통해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가 공동으로 개발하면 투자 비용을 줄이고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운영 전략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생성형 AI를 연구개발(R&D), 품질관리, 제조, 간접비 절감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 300~400개의 활용 사례를 개발하고 있으며, 각 사례에 대한 실제 성과를 세밀하게 측정하면서 솔루션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생성형 AI와 제품 시뮬레이션 기법을 결합해 개발 초기 단계에서의 시제품 제작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의 변화 방향은 명확하다. 맥킨지 미래 모빌리티 센터(MCFM·McKinsey Center for Future Mobility)에 따르면 2030년을 기점으로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신차 판매의 상당 비중이 전기차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기존 내연기관차 중심의 시장 판도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임을 시사한다.
산업 판도가 본질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유효했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르기엔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달라졌다. 새로운 경쟁 구도는 이제 '상수'가 되었고 더 이상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체슬라'의 공세를 뛰어넘고 성장의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까. 기회의 문이 닫히기까지 이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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