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에 허용되는 종합투자계좌(IMA) 사업자를 이르면 연내 지정한다. IMA는 정부가 2017년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목표로 도입한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정책의 일환이다. 제도 도입 후 실제 사례가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조건을 갖춘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으로 사실상 ‘2파전’ 구도다. 옛 대우증권 인수전에 이어 두 오너 경영인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회장 간 자존심 대결이 또 한 차례 펼쳐질 전망이다.

IMA ‘원금 지급’ 매력
미래·한투 ‘2파전’
금융위원회는 최근 종투사의 IMA 제도 구체화와 기업신용공여 확대 등을 담은 ‘증권업 기업금융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종투사는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제도다.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기업 신용공여(3조원), 발행어음(4조원), IMA(8조원) 등 단계별 신규 업무를 허용한다. IMA는 원금 지급 의무를 지면서 고객 예탁금을 기업금융 관련 자산(70% 이상) 등 다양한 부문에 투자해 이익을 좇는다 .
눈에 띄는 대목은 IMA가 ‘원금 지급형’이란 점이다. IMA는 예금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증권사(종투사)가 원금 지급 의무를 진다. 다른 금융투자 상품과 달리 ‘원금 지급’ 조건이 붙는 만큼 시장 판도를 바꿀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IMA 운용 구조를 뜯어보면 이렇다. 운용 자금 상당수는 A급 이상 회사채, CP 등 제로쿠폰 성격의 안전자산에 배분된다. 이 자산은 만기 시점에 사실상 원금에 거의 도달하도록 설계돼 지급 여력을 담보하는 기반이 된다. 나머지 자금 가운데 25%는 기업대출, 메자닌, 벤처 지분 등 모험자본에 공급돼 초과수익을 좇는다. 모험자본 투자에선 운용 성과에 따라 추가 이익이 날 수도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원금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설계된다. 이외 10% 안팎 자금은 단기채, 예금, MMF 등에 배정돼 중도 해지 요청이나 단기 시장 충격에 대응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 이런 구조를 기반으로 증권사는 ▲저수익·안정형 ▲중수익·일반형 ▲고수익·투자형 등 다양한 상품으로 구성할 수 있다.
IMA 첫 후보로는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현재까지 자기자본 요건(8조원 이상)을 충족한 곳은 이들뿐이다. 금융당국은 올 3분기 발행어음(4조원) 및 IMA(8조원) 종투사 신청을 접수해 연내 지정할 계획이다.
미래에셋금융그룹과 한국투자금융그룹은 국내 자본 시장에서 자웅을 겨루는 맞수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과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은 고려대 선후배 사이로 한국투자증권 전신인 옛 동원증권에서 함께 근무했다. 1997년 박 회장이 미래에셋을 창업하면서 라이벌 관계가 됐다.
실적이나 자기자본 측면에선 두 증권사 모두 부족함이 없단 평가다. 미래에셋증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1880억원, 세전이익은 1조2244억원, 당기순이익은 925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28%, 227%, 178% 늘었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 1조2837억원, 당기순이익 1조1189억원으로 준수한 실적을 냈다.
자기자본 측면에선 과거 대우증권을 놓쳤던 김 회장 쪽이 다소 뼈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증권사는 자기자본이 곧 ‘명함’이다. 다만, 최근엔 두 증권사 간 자기자본 격차가 2조원 안팎까지 좁혀졌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3월 신종자본증권을 7000억원어치 발행해 자기자본 10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연결 기준 자기자본 12조원을 웃돈다.
두 증권사 가운데 IMA 라이선스 확보 의지는 한국투자증권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단 평가다.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에 허용되는 발행어음을 적극 활용해왔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발행어음 조달 잔액이 17조3162억원으로 한도를 거의 채워 IMA 라이선스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발행어음 조달 잔액이 7조4733억원으로 여유가 있다. 이는 발행어음 사업 진출 자체가 다소 늦은 탓으로 분석된다. 과거 2017년 미래에셋증권은 초대형 IB 지정을 받으며 발행어음 인가는 받지 못했다. 당시 한국투자증권만 인가를 받았고 미래에셋증권은 2021년에서야 인가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미래에셋그룹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집중 조사하면서 발행어음 인가 절차가 약 4년간 지연됐던 탓이다. 이후 미래에셋증권은 발행어음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기조를 보인다.
그럼에도 두 증권사 모두 IMA ‘1호’ 타이틀을 뺏길 수 없단 의지는 강한 분위기다. 발행어음처럼 IMA 조달 자금도 레버리지 비율(총자산/자기자본) 규제 대상에서 빠진다. IMA는 만기 구조도 탄력적으로 설정 가능해 자금 운용 계획 수립이 수월하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변수
미래·한투, 檢 수사·내부통제 입길
변수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다. 두 증권사 모두 이 대목에서 약점을 하나씩 안고 있단 평가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10월 고려아연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진행 과정에서 사법 리스크를 맞닥뜨려 속이 편치 않다. 감독당국은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이전 유상증자를 계획했고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고 보고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공개매수 당시 고려아연은 “회사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 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 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상증자 대표 주관을 맡은 미래에셋증권이 공개매수 기간이던 지난해 10월 14~29일 실사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유증 사전 계획 의혹이 들불처럼 확산했다.
검찰 수사에서 고려아연의 부정거래 혐의가 수면 위로 드러날 경우 수사망은 증권사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자본시장법 71조에 따르면, 금융투자 회사는 고객이 ‘178조(부정거래 금지)’를 위반해 거래하려 할 때 그 거래를 위탁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고려아연 유증 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IMA 신청을 앞둔 미래에셋증권 입장에선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도 속이 편치 않다. 한국투자증권은 임직원이 무더기로 연루된 대출 비리와 회계 부풀리기 의혹 등에 휘말렸다.
지난 3월 검찰은 한국투자증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본부장과 소속 직원, 무등록 대부 업체 운영자 등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사금융 알선), 대부업법 위반, 이자제한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내부 임직원이 연루된 대출 사기 사건으로 내부통제에 구멍이 뚫렸단 지적이다.
사업보고서 조 단위 오류로 금융당국 회계 심사를 받는 점도 부담이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치 사업보고서를 정정 공시했다. 내부 회계 오류로 매출(영업수익)이 5조7000억원가량 부풀려진 탓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회계 기준상 포함하지 않는 부서 간 거래 외환 손익을 재무 회계에 포함해 영업수익과 영업비용을 과다 계상했지만 순이익에는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금감원 심사에서 중과실이나 고의가 인정되면 강제성 있는 감리로 전환된다. 감리 조사 결과 위반사항이 중대하거나, 고의적이라고 판단되면 금감원 제재가 이뤄진다. 한국투자증권은 단순 실수라는 입장이지만, 과실에 대해서도 금감원 제재는 가능하다. 지난 2021년 2월 키움증권은 2015~2019년 사업보고서 5년 치 기재 정정 건으로 기관주의와 1600만원의 제재를 받았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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