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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8100억 투입해 겨우 살려놨더니…

철수밖에는 길이 없나 ‘한국GM’

  • 김경민
  • 기사입력:2025.02.28 13:15:34
  • 최종수정:2025.02.28 13: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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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밖에는 길이 없나 ‘한국G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관세 폭탄을 예고하면서 완성차 업체 한국GM에 애꿎은 불똥이 튀는 모습이다. 한동안 잠잠했던 한국 시장 철수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사진설명

트럼프 “자동차 25% 관세”

수출 비중 높은 한국GM 직격탄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는 4월 2일 발표할 자동차 관세 세율은 25% 정도”라고 밝혔다. 예상보다 높은 관세율에 한국 자동차 업계는 저마다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한국GM이다. 국내 생산 물량 대부분을 미국에 수출할 정도로 미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라 고율 관세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GM은 지난해 총 49만4072대를 판매했는데, 이 중 국내 판매량은 5% 수준인 2만4824대에 불과했다. 한 달 평균 2000여대 수준으로 수입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 BMW보다 적다. 나머지 95%를 차지하는 47만대가량이 수출 물량이다. 이 중 41만8782대는 미국으로 수출된다. 전체 수출 물량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육박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GM은 GM의 수출 기지화 전략으로 내수 비중이 급감한 상태다.

최근 한국GM 실적이 회복세를 보인 것도 미국 의존도가 높았던 영향이 크다. 한동안 적자에 시달리던 한국GM은 수출 호조로 2022년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했다. 2023년에는 1조3501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 ‘트랙스 크로스오버’ ‘트레일블레이저’가 효자 역할을 한 덕분이다.

한국GM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지난해 29만5099대 수출돼 국내 승용차 수출 1위에 올랐다. 2000만원대 모델임에도 내부 공간이 넓어 가성비 좋은 차로 인기몰이 중이다. 또 다른 SUV 모델 ‘트레일블레이저’ 수출 물량도 17만8066대에 달해 지난해 국내 승용차 수출 4위를 기록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대형 SUV 모델에 탑재된 9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하고, 외부 소음을 저감시키는 ‘노이즈 캔슬레이션’ 등 각종 편의 사양을 접목해 고급스러운 소형 SUV를 표방했다.

한국GM에서 만든 차량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관세 없이 미국으로 수출된다. 만약 고율 관세가 시행되면 GM 입장에선 굳이 한국에서 생산 공장을 돌릴 이유가 없어진다. 한국GM 공장은 사실상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을 만드는 하청 기지 역할을 하는 만큼 25% 관세 폭탄을 맞으면 수익성이 급감할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 미국 GM은 트럼프 정부의 자동차 관세가 장기화할 경우 해외 공장 이전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폴 제이콥슨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가 주최한 투자자 콘퍼런스에서 “관세가 영구화되면 공장 이전 여부와 생산 할당 정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GM은 이미 해외 생산 기지에서 철수한 사례도 여럿 있다. 2013년 호주에 이어 2015년 인도네시아와 태국, 2017년 유럽과 인도에서 현지 공장 매각 등의 방식으로 철수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부과로 한국GM 철수 우려가 불거졌다. 사진은 한국GM 부평공장.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부과로 한국GM 철수 우려가 불거졌다. 사진은 한국GM 부평공장. (연합뉴스)

한국GM 철수설 다시 불거지나

R&D법인만 존속할 수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완성차 업계에서는 한동안 잠잠해졌던 한국GM 철수설이 다시 불거지는 양상이다. GM은 2012년 당시 전북 군산공장 생산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세단 ‘크루즈’의 차세대 모델을 미국, 유럽 등 해외 공장에서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철수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2018년 GM은 실제로 한국 철수를 추진했다. 당시 GM은 전동화 전환에 따라 전 세계 사업장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한국도 구조조정 대상국에 포함됐다.

하지만 정부가 GM에 공적자금 8100억원을 투입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GM은 전북 군산공장만 폐쇄한 채 한국 사업장은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최소 2028년까지 한국GM의 최대주주 지위를 가져가기로 했다. 이후 국내 사업장을 부평공장의 생산법인, 연구개발(R&D)을 전담하는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로 분리해 운영 중이다.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의 25% 관세 폭탄이 현실로 다가오면 GM이 부평공장 생산법인을 철수하고 GMTCK만 유지할 것이란 시나리오가 솔솔 나온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야 할 한국GM의 내수 판매량이 갈수록 하락세를 보이는 점도 철수설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한국GM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2만4824대로 전년 대비 36%가량 줄었다. 한국GM은 세단 모델인 스파크, 말리부 등을 단종하면서도 별다른 후속 모델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트레일블레이저, 트랙스 크로스오버 등 일부 모델로 버티지만 신차 사이클에 따라 향후 3년 내 트레일블레이저를 대체할 후속 모델을 내놓아야 하는 실정이다.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수입차 업체 공세가 거세 후속 모델이 성공할지도 장담할 수 없다.

고율 관세 여파로 수출 성과가 줄어들면 당연히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미국이 10% 관세만 부과하더라도 한국GM 수익이 급감할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 대당 평균 가격을 3000만원이라고 추산할 때 관세를 10% 부과하면 300만원이 수익에서 빠진다. 이를 지난해 미국 수출 물량인 42만대에 적용하면 1조2600억원의 수익이 감소하는 셈이다. 2023년 영업이익(1조3501억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겨우 분위기가 살아난 상황에서 GM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 국내 완성차 업계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국GM 협력사 단체인 협신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GM의 1차 협력사는 276곳에 달한다. 2, 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약 3000곳에 이르는 만큼 완성차 업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GM 직원 수도 1만1000여명에 달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미국 관세가 부과되면 한국GM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GM에 철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과 달리 한국GM은 국가 차원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한국GM이 지난해 말 희망퇴직을 실시한 것을 두고서도 뒷말이 나온다. 당초 상무급 임원부터 부장, 차장급까지 희망퇴직 대상이었는데, 이후 팀장급 이하까지 확대돼 진행했다. 이를 두고 완성차 업계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 철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리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GM은 국내 시장 투자를 지속하겠다며 진화에 나서는 분위기다. GM은 그동안 한국 시장에 9조원(약 62억달러) 이상을 투자해왔다. 단기간 성과보다 장기적인 내수 시장 확대에 초점을 두고 국내 인프라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는 게 한국GM 측 입장이다.

“2018년 한국GM 철수설이 불거질 당시에는 정부가 신속하게 공적자금 지원을 결정해 대처했지만, 지금은 탄핵 정국이라 정책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 문제다. GM으로서도 고율 관세 부과 이후에는 굳이 한국GM을 운영할 이점이 사라지는 만큼, 혹여 철수할 경우 한국 자동차 산업 피해를 줄일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9호 (2025.03.05~2025.03.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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